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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an 18. 2024

우리들의 별빛 여행

이곳은 일본 도쿄에서 가까운 온천마을 하코네, 도쿄 신주쿠역에서 한 시간 반 남짓 이름도 예쁜 로망스 카를 타고 딸네 가족과 함께  어제 이곳으로 왔다. 말로만 듣던 료칸에서 하루를 즐기는 여행이다. 일본의 전형적인 생활전통을 느낄 수 있는 료칸에서의 하룻밤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잠을 자보는 것도 처음이며 일본인 들의 생활복인 유카타를 입고 산속에 있는 료칸의 주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특히 오늘 저녁식사로 마련가이세키 요리는 얼마나 맛있을까? 식사 전에 온천욕을 하는 것도 배를 비워두기에는 적당한 방법이다.


지금까지의 일본여행은 잊자. 다만 오늘 밤 별이 쏟아지는 노천 온천탕에서의 낭만만 기억하자.


저녁식사는 여덟 시로 예약이 되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료칸에서는 간간히 간식을 제공해 주었다. 맛있는 저녁을 위해 간식도 패스하고 나와 딸과 손녀는 동백꽃잎이 뚝뚝 떨어지는 노천탕에서 물놀이, 꽃놀이, 아니 별놀이를 즐겼다. 겨울답지 않은 온화한 날씨에 주변에 즐길 거라곤 자연뿐인지라 가족여행으로는 이만한 곳이 없을 듯싶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만 바라봐도 가슴이 벅차다.


그. 런. 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지금, 막, 방금, 일어났다.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신자 이름에 '원룸학생'이라고 뜨지만 않았어도 나는 국제전화를 냉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집 아래층에는 대학원에 다니는 여학생이 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 세입자에게서 걸려 오는 전화는 분명 반가운 전화는 아닐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에 물이 첨벙거려요 한번 내려와 봐 주실래요?"


이게 웬 노천탕 욕조 깨지는 소리랍니까?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갑자기 별빛이 사라지고 물 위에

떠 있는 동백꽃잎이 처량해 보인다.


"여기 일본인데...."


"네,,???"


서울의 기온을 확인해 보니 영하  7도,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조금 전만 해도 즐거웠던 가족 여행이 갑자기 사고대책위원회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때마침 기다리던 식사시간이 되어 육, 해, 공  순서대로 맛깔스러운 재료들이  화롯불에서 익어가고 있지만 요리가 눈에 들어올리 없다. 


일본료칸여행은 나뿐만이 아니라 남편도 처음이다. 남편은 식사하는 동안에 이곳에 있는 여러 종류의 일본 술을 원 없이 마실 수 있다는 걸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사케를 사위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일의 수습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엄동설한에 추운 방에서 망연자실하고 있을 세입자를 우선 진정시키고 아직 회사에 있을 아들에게 집으로 가볼 것을 부탁했다. 다행히도 전에 우리 집을 고쳐 준 적이 있는 집수리 전문가의 전화번호가 기록되어 있어 급히 연락을 취했다. 그분은 지금 지방에 공사가 있어 내려가 계신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급한 사정을 듣고는  누수 전문가에게 연락을 취해 주겠다고 한다.


아들과 세입자. 누수전문업자와 소개를 시켜준 사장님, 서로 보이스톡과 카톡으로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곳저곳 부지런히 연락을 하는 동안 가끔 뭔가 모르는 음식이 불쑥불쑥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남편과  딸이 넣어주는 가이세키요리지만 맛을 음미할 수는 없었다.


식탁 위의 화롯불이 사그라들고 딸과 사위 남편의 얼굴이 붉어지는 동안  집에 도착한 아들에게 마지막 문자가 왔다.


오늘 밤  물이 새지 않도록 수도와 보일러를 잠가놓았으며 내일 전문가가 와서 고쳐주기로 했다는 것,  세입자는 자신의 친구집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으니 걱정 말고 여행을 즐기다가 오시라고 한다.


휴,,,  한 차례 쓰나미가 훑고 지나간 듯하다. 나는 유난히 걱정이 많다. 걱정이 없다는 건 매사 무심하고 공감능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걱정을 하지 않으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오늘 밤은 잠시 걱정은 보류해도 된다. 집으로 급히 달려와 뒷수습을 한 뒤, 걱정하지 말고 여행을 즐기시라고 문자를 보낸 아들의 마음, 밤중에 물난리를 맞고 친구집으로 대피하면서도 오히려 여행 중이신데 죄송하다고 말한 착한 세입자,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는 수리업자에게 부탁하여 도움을 주신 집수리전문 사장님, 이들 모두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져서 인지 사케 한잔도 마시지 않았는데 마음이 취한다.


취한 이들과 함께 밤마실을 나왔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 만에 보는 은하수인가, 목이 아프도록 오래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저렇게 아름다운 게 많은데 우리는 무언가에 가려져서 보지 못하고 살 때가 있다. 오늘밤 저 별빛을 바라본 것 만으로도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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