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딸네 가족과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다녀왔다.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다행히 우리가 집으로 돌아온 그다음 날 중국 우환시에서 우환이 터졌다. 우환폐렴이라 불렸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 불리기도 했다. 해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입국자들을 격리하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뜸했다. 하루아침에 어제와 다른 세상이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두고, 4인이상 집합금지라니... 공산국가에서나 있음 직한 일들을 국민들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무려 네 차례의 예방접종을 맞고 코로나와의 전쟁 속, 전방 2미터 밖으로 떨어지는 비말의 총알을 비켜가며 하루하루를 무사하게 지내기에 급급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엔 답답하기만 했던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뭔가 어색했다. 지루한 전쟁도 그 끝이 보이는 듯했다. 코로나19를 인플루엔자와 동등한 4급 전염병으로 간주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내려지자 사람들도 이젠 전처럼 활기를 찾았다. 실내 마스크 의무화가 해지되면서 코로나에 대한 불안도 점차 사라졌다. 그랬는데.....
덜컥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힘들어했을 때에도 혼자서만 유일하게 코로나에 걸리지 않자 슈퍼항체를 가졌는 가 보다고 자신 하였는데 결국 막차를 타게 된 것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프기는 처음이에요 (우리 사위)
무슨 병이 이렇게 지저분 하지?(우리 딸)
죽는 줄 알았네(우리 아들)
할머니도 한번 아파보면 아실 거예요(외손녀)
코로나에 걸리고 난 뒤 우리 가족들이 말한 에필로그다.
처음 자가진단키트에 두 줄이 나올 때까지 약간의 코맹맹함 밖에 느끼지 못했다. 열이 없다 보니 그때까지도 감기인 줄 알았다. 내가 감기 증상이 있고 나서 사흘뒤, 갑자기 남편이 콧물을 줄줄 흘리며 자가진단으로 두줄을 확인한 뒤에야 나도 혹시나 해서 검사를 해 봤더니 선명한 두 줄이 나타났다. 남편은 전에 한번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은 적이 있는 재감염 환자다. 남편에게 코로나를 전염시킨 사람이 바로 나라니...
지정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평상시처럼 생활해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가격리 의무화를 이행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던가.
우리 부부는 스스로 자가격리를 했다.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아이들이 집에 오는 걸 금지시켰다. 발병한 지 5일이 지난 후에도 될 수 있으면 외출을 금했다. 남편의 경우 재감염 환자인데도 고통이 심한 걸 보니 이미 한 차례 코로나에 확진된 적이 있다고 마음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감기증상과 비슷해서 수월하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쉽게 물러날 코로나가 아니었다. 한 달 내내 감기증상이 지속되었다. 다행히 열은 없지만 목이 잠기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쩌나... 내 목소리가 변했다. 마치 거친솔로 바닥을 긁는듯한 소리가 난다.
감기 기운이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이번엔 오른쪽 다리가 시큰거린다. 이것도 코로나 후유증일까? 나를 진찰한 외과의사는 아직 학계에 보고 된 적은 없지만 신체의 약한 부위를 공략한다는 근거는 있다고 한다. 일주일 분의 처방약을 주었다.
아픈 다리는 나을 기미가 없는데 독한 약을 먹어서 인지 이번에는 위장이 탈이 났다. 코로나로 시작된 질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음엔 내 몸 어디를 공략할지 놈의 계획을 모르겠다.
코로나는 정말 무서운 녀석이다. 아직도 어딘가에 숨어서 시시 때때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끈질긴 놈이다.
오늘 마스크를 한 박스 준비했다. 더 이상 코로나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나도 무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