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Dec 27. 2023

트리는 사랑이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나는  트리를 꾸민다. 집 앞에 볼품없이 자란 향나무 줄기를 잘라 트리를 만들고, 다용도실에 간수해 둔 트리를 꺼내 전구와 색색의 오너먼트를 달아 장식을 한다. 마지막 남은 한 달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일은 어느덧 연례행사가 되었다.


트리를 꾸미면서 한 해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을 생각한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난 한 해 동안의 기억들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불을 밝히면 나쁜 일들은 잊히고 좋은 기억들은 희망으로 변한다.


장작불을 피운 벽난로 옆에서 반짝이고 있는 트리, 소쿠리에 가득 담긴 과일 바구니. 흔들의자에 앉아서 아이들 옷을 뜨개질하고 있사랑스러운 여주인공모습,


어렸을 적에 즐겨 읽었던 소설 속 배경이었던지 아님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따뜻한 풍경 속에 나의 미래를 그려 넣었고 그걸 행복한 삶이라고 규정지었다.


이런 나의 바람이 세월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자라지 않는 '인형의 꿈' 일 줄이아...

 

보일러가 벽난로를 대신하고 김치냉장고의 성능은 과일의 싱싱함을 오래도록 보존한다. 그뿐이 아니다. 오리가 자신의 겨드랑이 털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주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한겨울 오리털외투가 있으니 없는 솜씨로 뜨개질을 할 일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건 오직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히는 일뿐이다.


트리에 색색의 오너먼트를 달면서 행복한 이유는 어쩌면 어린 시절에 가졌던 낭만을 다시 되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작년에 사용하고 다용도실에  간수해 둔 트리를 꺼내보니 이곳저곳 상한 가지가 많다. 제 아무리 오래가는 플라스틱 재질의 트리라 해도 세월을 이겨낼 재간은 없었던가 싶다.


주문한 트리가 도착한 날, 언박싱을 하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트리를 꾸미고 또 성탄절이 지나면  들여놓고 하기를 마흔 번,  그 사이  함께 트리를 꾸미며 좋아하던 아이가 마흔 살을  훌쩍 넘겼고  그 아이의 아이가 태어나서  열세 살이 되었다. 트리는 내가 꾸몄지만 점등식은 손녀에게 맡겼다. 내가 가졌던 순수한 꿈을 대물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올 후반기에 내가 한 차례 입원을 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무탈하고 내년 한 해를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자는  의미의 송년파티다.


트리에 엄마 아빠가 주는 용돈 봉투를 매달아 두었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손녀와 올해 첫 자기 집을 장만한 아들, 새로  이사를 가는 딸아이에게 주는 마음의 선물이다. 


아이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시끌벅적하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이 온 집안을 따뜻하게 비춘다. 행복한 시간이다.


집안에 트리가 반짝이는 12월이  되면  나는 사랑이 충만한 나무가 다. 

         12월의 집안 풍경

이전 06화 제주 밤바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