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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an 03. 2024

새해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다섯 달째 현관 앞에 방치되어 있는 나의 자전거, 지난여름 나와 함께 내리막길을 달리다 넘어진 후로 지금까지 한 곳에서 조용히 대기 중이다. 나도 다쳤지만 자전거도 많이 다쳤다. 기아의 손잡이가 뒤틀리고 자전거 역시 내 다리처럼  여기저기  상처가  많다. 그 즉시 고쳐서 말끔 해 지긴 했지만 그 후로 나와 함께 할 수는 없었다.


새해가 되어 계획을 세우면서 자전거  라이딩이 걸림돌이 되었다. 타야 하나?  타지 말아야 하나? 처음 가볍고 스마트  전기 자전거가 나에게로 왔을  이름까지 지어주며 좋아했었는데...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사람들은 한결같이  내가 탄 자전거에게 사고의 책임을 덮어 씌웠다. 다른 물체에 부딪힌 것도, 또한 피하려고 한 것도 아닌 달리다가 전복이 되었다는 상황만으로 판단한 것이.


그날 언덕에서 내려왔을 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고 마음이 급했던 건 나였다. 조급한  마음에 뭔가 조작을 잘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나를 쓰러뜨렸다는 것 만으로 자전거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처는 이미 아물었지만 다시 라이딩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세워둔 자전거를 볼 때마다 넘어졌을 때의 아찔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만 헤어져 있으면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 달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해를 넘기게 될 줄 몰랐다.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단체활동이 금지되었을 때 남편과 나는 자전거라이딩을 하면서 우울한  시기를 견뎠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서와 달리 자전거가 갈 수 있는 길에서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얼음이 녹는 샛강의 자전거길을 달리며 소리로 느끼는 봄이랄지,  자전거가 아니면 갈 엄두도 내지 않았을 물안개 서린 남한강의 여름풍경이라던지, 가을날 용문사의 단풍터널을 달릴 때면 나도 자전거도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은 듯하였더랬다. 바람처럼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젊은 라이더들에게 온순하게 길을 비켜주며 여유롭게 달리면서 바라보았던 한강의 노을은 자전거 라이딩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껏 나는 자전거를 타기를 망설이고 있다. 가족들은 내가 다시 자전거를 타지 않았으면 한다. 남이야 뭐라던 나와 자전거 사이의 우정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자전거 역시 언제라도 나와 함께 달리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망설이고 있다. 우리 사이에 신뢰가 깨진 걸까?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제일 먼저 자전거와 눈이 마주친다. 모른 척 스쳐 지나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올해 우리 부부는 제주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자고 계획을 세웠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여행이 아니라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낯선 마을에서 하루쯤 머물기도 하고 쉬엄쉬엄 쉬어가는 그런 여행을 계획했다. 


새해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아까부터 계획표를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다. 보류와 실행의 결정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아무래도 우리의 우정을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제주도 돌담길을 따라 망아지처럼 달리게 될 그날이 올해 안에 이루어 지길 바란다. 현관 밖에 서 있는 자전거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려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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