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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의 정원 May 29. 2021

씨앗의 휴면

씨앗은 휴면한다.

대사활동을 중단한 채 정지된 상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얼핏, 생명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씨앗은 일생에 단 한 번 싹 틔울 기회를 갖는다.

싹을 틔우는 일은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기에 싹을 틔우기 적당한 타이밍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씨앗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생사가 걸린 일이다.

생명의 징후가 보이지 않던 씨앗들은 적절한 온도와 습도, 빛의 여부를 확인하여 싹 틔울 시기를 결정한다. 씨앗의 발아는 씨앗이 수분을 빨아들이며 시작되는데, 마치 스펀지처럼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수분을 흡수한다.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는 씨앗은 벌써 싹 틔우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씨앗의 자연사 중 일부 발췌




 밥을 하기 전에 쌀이나 잡곡을 씻어 불리면 바싹 마른 쌀과 잡곡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쌀과 잡곡을 흙에 심으면 싹을 틔우고 자라난답니다.


 씨앗을 심기 전에 보통 촉촉한 솜에 (혹은 물에 담가) 씨앗을 불리기 시작합니다. 씨앗들마다 걸리는 시간은 다르지만, 하룻밤만 지나도 씨앗에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생명이 차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씨앗이 벌어지며 빼꼼히 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저는 조용히 환호하며 조심스레 흙으로 씨앗을 옮겨심습니다. 그러면 며칠 안에 어김없이 연둣빛 새싹이 쏘옥 고개를 내밉니다.


 잠자는 씨앗을 깨우는 것은 적당한 양의 물과 온기입니다. 씨앗이 싹트는 조건을 보며, 잠자는 아이들의 잠재력은 어떤 환경에서 잘 발휘될지,  아직 깨어나지 못한 나의 잠재력 또한 어떤 상황에서 깨어나려는지 생각해 봅니다.


 씨앗마다 발아 조건이 다르듯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밝고 창의력이 풍부한 첫째 아이에게는 어떤 부분을 도와주어야 할지, 바르고 제 할 일 똑부러지게 잘하는 둘째에게는 어떤 부분이 필요할지 또한 곰곰이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텐데, 오늘 아침도 잔소리와 꾸중으로 시작하고 말았음을 깨닫습니다. 잔소리는 씨알도 안 먹히는 아이에게 오늘도 헛수고를 하다니! 어리석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 씨앗과 달리 사람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도 또 기회가 있다는 점입니다. 끊임없이 시도해도 된다니, 정말 든든한 빽이 아닐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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