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두 남자
법륜스님이 육아에 큰 도움을 주셨다면, 우리 남편은 10년간 같이 살며 날 ‘사람’ 만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우리 남편 사람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확히 그 반대다.
결혼 초반에 주위 사람들은 꼼꼼하고 야무진 내 모습을 보고 남편에게 “부인 참 잘 만났다.”는 말을 했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 물정 모르고 착한 곰인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실은 세상 물정 빠싹하게 아는 착한 여우였다.
성인이 된 뒤부터 결혼 초까지,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악몽에 시달렸다. 주로 가족에 대한 꿈이었는데 동생이 많이 아프거나 부모님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거나, 혹은 부모님과 내가 정말 심하게 다투거나 하는 내용이었다. 악몽에 시달리던 내가 한밤중에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 잠에서 깨면, 남편은 따뜻한 목소리로 “그냥 꿈이야. 잊어버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있잖아.”하고 말하며 내가 진정될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나 내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고,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어린 시절 아픈 이야기들을 한없이 쏟아내었다. 그러면 남편은 “그랬구나.”하며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곤 했다. 충분히 감정을 털어낸 후 다시 잠을 잤다. 한밤중 눈물의 하소연은 1년 가까이 이어졌던 것 같다. 긴 기간 숙면을 방해받으면서도 (비록 졸았을지언정) 단 한 번도 짜증 내지 않던 남편에게 정말 감사하다. 남편의 노력 덕분에 악몽에 시달리던 횟수는 차차 줄어들었고, 이제는 일 년에 한두 번으로 확연히 줄었다.
조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성인이 된 후로 줄곧 부모님을 원망했었다. 어린 시절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감정이 무서운 것이, 나의 근원인 부모님을 미워하다 보면 그 미움의 화살이 결국은 나를 향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가장 고마운 점은, 내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했다고 불평하거나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많은 대화를 나눠준 것이다. 남편은 어지간한 일에는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는데, 내가 부모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면 부모님의 편에 서서 그분들의 입장을 대변해주었다.
남편이 해 주었던 말들은 주로 이런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부모님은 분명 너에게 사랑을 주셨어. 그것이 네가 원하는 만큼 충분하지 않았거나, 표현 방법이 네가 원하는 것과 달랐다고 해서 그분들이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어,”
“부모님 세대가 애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시잖아. 부모님들도 부모로부터 그런 사랑의 표현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법이 서투르셨던 게 아닐까?”
“네가 생각하는 부모님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분들께 강요하지 마. 그건 말 그대로 너의 이상형일 뿐이야. 있는 그대로의 부모님을 인정해드려야 해. 네가 원하는 대로 그분들을 바꿀 수는 없어.”
“욕심을 버려. 그리고 기대하지 마. 기대가 커지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거든!”
“아니, 여보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야? 살아있는 부처님이야?”
긴 대화 끝에 내가 감탄을 하며 물으면 그제야 단호한 눈빛을 풀고 또 배시시 웃는다.
최근, 다시 부모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여보, 난 말이야, 존경하는 사람을 말해보라는 질문에 한 번도 부모님을 말한 적이 없다. 부모님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어! 존경할만한 부모님을 가졌더니 말이야. 나도 부모님을 존경한다 말하고 싶은데, 난 부모님의 어떤 모습들은 정말 존경스럽지가 않거든. 그 모습들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야.”
“그래? 난 장인어른 장모님 충분히 존경받을만한 분들이라 생각하는데! 성실히 일하시고, 정말 열심히 사시잖아!”
“그런 부분도 있는데, 아닌 부분도 있잖아. 물론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셨지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신 것도 사실이니까. 난 그걸 받아들이기 어려워.”
“세상 사람 누구나 다 그래! 모든 면이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고, 잘못도 하고 그러는 거지.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이셔.”
남편의 마지막 말을 듣는데, 머리에 큰 울림이 옴과 동시에 답답했던 마음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그렇지! 맞아, 우리 부모님께도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는 것이었어. 난 왜 모든 면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부모님도 다 같은 사람인데.”
마음 깊은 곳에서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에 대해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왔던 마음 한 켠에는 죄책감과 찜찜함이 함께 자리했는데 그것들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충분히 훌륭하고 마땅히 존경받을 분들이라는 말을 그 누구도 아닌 내 남편에게 들으니, 참 좋았다. 그리 말해주다니 고마웠고, 내 어리석은 생각을 깨우쳐 주니 또 감사했다.
“여보, 나 지금 되게 마음이 후련하다!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나 봐. 정말 고마워!”
(그 누가 우리 부모님이었어도, 예전의 난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불만의 안경을 쓴 채 바라보았으니 말이다. 이제 말끔히 그 안경을 벗어던졌다. 가끔 나도 모르게 다시 그 안경을 쓸 때가 있지만, 이제는 내 안경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으니 이내 벗어던질 수 있다. 그런 힘을 갖게 되어 참 좋다.)
종종 남편에게도 하는 말이지만, 난 우리 남편 말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매일 지지고 볶고 싸웠을 것 같다. 또한 우리 남편은 나 아닌 그 누구와 결혼했어도 이렇게 안 싸우고 잘 살았을 것이다.
남편을 잘 아는 친구들도 남편이 그저 착하고 긍정적인 성격인 줄로만 알고 있는데, 지난 10년간 함께 지내오며 알게 된 우리 남편은 착하고 긍정적인 것에 더해 눈치 빠르고 성질이 온순하며 지혜로운 사람이다.
함께 있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고, 상대가 누구이건 공손한 태도로 대한다. 남자로서 좋아하는 것 이전에 인간으로서 정말 존경하고 좋아한다!
(아, 물론, 우리 남편도 인간인지라 단점도 무지하게 많다.
설거지 안 하고, 화장실 청소 안 하고, 쓰레기 제깍제깍 안 버리고 핸드폰 게임하고 밥도 엄청 빨리 먹고ㅋㅋ)
그러나 그 단점들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나에겐 최고의 남편임에 틀림없다. 이런 것들은 백번이라도 눈 감아줄 수 있다! 그저 나 같은 성질 더러운 사람을 보듬어주는 것에 감사하다.
글 초반에 남편이 날 사람 만들었다고 한 것과 관련해서, 요약하자면 남편은 나에게 아래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도와줬다.
욕심과 기대를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했다. 특히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다만 감사하는 마음을 낼 수 있도록 했다.
남편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늘 예쁘다고 말해준다. 못난 내 모습도 괜찮다고 말해주니 자존감도 높아지고 행복하다.
남편의 행동을 보며 나도 닮아가려 노력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감사하며, 고개 숙일 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