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과 우리 남편 1

내 인생을 바꾼 두 남자

by 씨앗의 정원

나는 종교가 없다.


어린 시절, 교회와 성당에 모두 다녀보았지만 크게 감흥이 없어 이내 그만두었다. 절은 접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대학 시절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법륜스님을 알게 된 것도 이 시기이다.




인도 비하르주 보드가야의 둥게스와리 마을에는 인도JTS에서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이 있다. 난 그곳 학교와 유치원에서 음악과 미술을 담당하는 선생님으로 6개월간 활동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활동이었다.


법륜스님은 JTS 이사장님 이셨고, 내가 활동하는 기간 동안 5번 정도 인도JTS에 오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법륜스님은 오실 때마다 자원봉사자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시며 조언도 많이 해 주셨다.


하루는 인도JTS의 모든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이 작은 방에 모여 법륜스님께 개별적으로 조언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성질내지 말고 사세요!”


내 차례가 되자 스님께서는 나에게 성질 좀 죽이고 살라고 하셨다. 뜨끔했다. 얼굴에 성질 나쁜 게 쓰여 있나? 스님과는 대화도 몇 마디 나눠보지 못했는데, 뭘 보고 성질이 나쁘다고 판단하신 걸까 궁금했다. (동료들이 깔깔대며 웃었던 것을 보면, 그들도 인정했던 것 같다.)


법륜스님께서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개인별 맞춤 기도문을 주셨는데, 나에게 주신 기도문은 “성질내지 않겠습니다!”였다.


당시 매일 새벽예불을 드리며 108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며칠간 ‘성질내지 않겠다’는 기도를 하며 절을 해 보았다. 그러나. 예상대로 며칠 만에 더 성질이 올라와 기도를 그만두었다.


그것이 2003년, 20대 초반의 일이다.




그 후 법륜스님은 날이 갈수록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아지셨다. 공중파 티비에도 많이 출연하시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로도 인기가 많으시다. 책도 많이 집필하셨다.


나는 여전히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스님의 책이 나오면 구입해 읽어 보았고, 영상도 종종 찾아보며 법륜스님이 주신 기도문을 오래도록 곱씹어보았다.


결혼하고 둘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성질을 죽이고(숨기고) 사는 것이 가능했다. 즉, 성질이 더럽다는 것이 내 인생에 크게 해를 가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숨기고 살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둘째 아이가 태어난 뒤였다. 아이 하나까지는 성질 안 내고 키우는 것이 가능했는데, 둘이 되니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유난히 질투를 많이 했던 첫째는 동생을 때리거나 떼쓰는 일이 잦았고, 그 꼴을 더 이상 보지 못한 나는 빼애액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고함을 치던 그 순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머리에 박혔다. 처음 듣는 엄마의 고함에 당황한 아이의 표정도 생생히 기억난다.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그 사건 이후, 다시는 아이에게 고함치지 않겠다 다짐했고 한 동안 꽤 조심했다. 그러나 한 번이 어렵지, 아이에게 고함을 치는 일은 두 번, 세 번 늘어나게 되었다.


낮에는 아이에게 소리치고 밤이면 미안함에 눈물 흘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스님께 고민을 말하면 스님께서 답변을 주시는 형식의 영상인데, 주로 나와 비슷한 엄마들의 사연을 검색해 들었다.



법륜 스님은 육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젊은 엄마들의 질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가 짜증 내거나 소리를 지르고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럼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지금 당장 그 과보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껏 성질내며 아이를 키우는데, 그럼 아이가 시춘기가 되었을 때 큰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정신이 퍼뜩 든다.


기회가 될 때마다 법륜스님 영상을 들었다. 법륜스님의 유튜브 채널에 있는 거의 모든 영상을 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젠 질문만 들어도 어떤 답변을 하실지 훤하다. 그리고 그 답변들을 내 상황에 적용하여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일 때 법륜스님 영상을 보곤 했더니, 어느 날 영상을 틀어두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스윽 다가와 묻는다.


“오늘 스트레스받는 일 있었어?”

“아니, 그냥 듣는 거야 노래 듣듯이.”

“그럼 다행이고!”



“엄마, 엄마는 법륜스님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할 거예요?”

“음, 엄마는 질문할 것이 없어. 고민이 없거든!”


뭔가 다른 대답을 예상했던 것인지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마도 자신에 관한 질문을 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


“우리 때문에 속상한 일 많잖아요!”

“아! 그렇지. 엄마는 너희에게 소리 안 지르는 방법을 여쭤봐야겠다! 엄마는 너희에게 소리 안 지르고 싶거든!”


대답을 들은 아이들이 만족스러운 듯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소리 안 지르고 성질내지 않고,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웃으며 잘 지내보도록 해야겠다.




엄마들의 육아 멘토로 오은영 박사님이 계신데, 나에게는 법륜스님이 육아 멘토였다. 아이들과 진이 빠지도록 실랑이를 하다가도 스님의 법문을 떠올리며 이내 진정할 수 있었다.


결혼도 안 해보고 아이도 안 낳아본 스님이 무슨 육아 멘토냐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 존경스러운 스승님이시다. 법륜스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운 육아를 했을 것이 뻔하다.


비록 20대 초반에는 깊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만, 오래전 인연을 맺은 그분이, 40이 된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영향을 주고 계신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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