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TV에서 이혼에 관련한 예능을 자주 볼 수 있다. 이혼 후 다시 만나 그간의 쌓였던 감정들을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돌싱들이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이야기들도 여러 곳 나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들이 있다.
저 사람들은 이혼 후 어떻게 저렇게 쿨하게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간의 일은 다 있고 새로운 사람을 또 만나고 사랑을 할까 하고 말이다.
나는 이혼까지의 과정도 진흙탕 싸움이었지만, 이혼 확정 후에도 그리 순탄하지 많은 않았다. 아이를 보냈던 그날 남편과 시누와 통화를 하며 온갖 욕설이 오고가고 소리를 질렀으며 싸웠다. 서로 무얼 얻기 위해 그렇게 치열하고 죽자고 달려 들었었던 것일까.
결혼 생활 내 살면서 받았던 상처며 아픔보다 이혼의 과정에서 받은 상처가 더 컸었을 것이다.
남편쪽에서는 나를 돈만 밝히고 자신 버린 애미 취급 했으며, 나는 가정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으며 다른여자와 결혼 한다고 이혼 해달라는게 뭐가 그리 당당하냐며 싸웠다. 그 어떠한 것을 서로가 얻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누가 누구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냐를 겨루기라도 하듯이 하나라도 도 못 된 말을 하고 상처를 주기 바빴다. 아이를 보내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받아야 할 자료가 있어 들린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황당하게도 남편쪽 집에서 내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찾아 오면 연락달라고 했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아이를 데리고 갈꺼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다고 한 들 그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이혼이 확정되기 전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아이가 독감에 걸렸다고 말이다. 시누집에도 아이가 둘이나 있기에 옮으면 안 된다면서 봐 줄 수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아이를 좀 봐 달라며 연락이 왔다. 그 당시 내가 수술을 하고 2개월 정도쯤 되었던 것 같다. 나역시 재채기 한 번 만으로도 허리에 엄청난 통증이 가기에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할 때였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그 어린 아이를 독감에 걸린 채 혼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2개월만에 만난 아이는 내 앞에서 울기 조차 하지 않았다. 슬픔을 가득 담은 눈망울로 그저 “엄마”하고 안겨 떨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독감이 지나가고 이혼확정이 되기 얼마전 남편이 아이를 만나라며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거기에서 또 엄청난 충돌이 발생했다. 아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 친정집에서 아빠와 함께 대구로 왔는데 난데없이 시누가 아이를 못 데리고 가게 하는게 아닌다. 애아빠가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고모가 왜 막냐며 또 싸웠다. 시누의 이유는 내가 데리러 왔다가 데려다 주는 시간이 맘에 안 든다는 이유 그 하나였다. 아이 패턴이 깨진다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 내가 할 수 있는 욕은 다 했다. 그리고는 본인이 해결 하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왔고, 나는 아이를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남편은 이혼을 잘 해결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의 이혼은 확정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잠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애를 나에게 다시 보내겠다는 식으로 연락이 왔다. 나도 아이를 한없이 데리고 오고 싶지만 이건 감정적으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혼 전에도 양육비로 늘 속 썪이던 남편이었는데 다시 애를 보내고 나서 양육비는 제대로 줄까? 그때도 아이를 안 찾던 사람인데 아이를 다시 보내고 나면 과연 아이를 만나기는 할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내 몸이 아직 회복 되지 않은 상태에 일도 하지 않고 있는데 아이를 데려와 혹시 모를 경제적 상황에서 해결 할 능력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 나의 단호한 모습에 남편은 화가 났고 스피커 폰으로 아이에게 내 이야기가 들리게 했다. 그리고는 엄마가 너 버린거라고, 엄마가 널 데려가지 않겠다고 한다고 아이에게 들려 주었다. 아이는 한 없이 울고 있었고 나는 그 울음소리에도 내 입장을 꺽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내가 자기를 데려가지 못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면접교섭권에 따라 2주에 한번 아이를 만나고 있었는데, 1년쯤 지났을 땐가 아이가 울면서 메달렸다. 한번도 내 앞에서 울지 않던 아이가 울며 엄마랑 같이 살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이제 겨우 7살인 아이를 안아주며 이야기해주었다.
“엄마도 너무 너무 같이 살고 싶은데, 엄마는 그럴 수가 없어. 엄마는 아직 몸이 많이 안 좋아, 그래서 아직 일도 할 수가 없어. 근데 너를 데려 올려면 학교도 보내야 하고, 밥도 해서 먹여야 하고, 돈이 필요해. 근데 엄마는 아직 그 돈을 벌 수가 없어. 너가 혼자서 밥도 챙겨 먹을 수 있고, 혼자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가고 많이 컸을 때, 그때 엄마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지면 우리 그때 같이 살자. 엄마가 언제라고 말은 못 하지만, 그런 때가 오면 우리 꼭 같이살자. 엄마 약속 할게” 이렇게 말을 해 준 후로 우리아이는 나에게 단 한번도 엄마랑 같이 살자는 이약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울며 돌아가지 않는다.
그 어린아이가, 불안도 많은 아이가 그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삼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픔을 참고 이겨내고 있을까. 남편과 나는 서로의 이기심으로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아이에게 모든 슬픔을 전과하였다.
코로나가 시작된 해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기에 나에게 매주 주말에 아이를 좀 돌봐 주면 안되냐고 연락이 왔다. 시누한테 맡기라고 했더니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사실 남편과 시누사이가 벌어진 건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남편이 아이를 만나라고 했을 때 시누가 만나지 못 하게 했던 그날 두사람이 많이 싸웠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남편은 우리집과 시누집 사이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낮에는 시누에게 아이를 맡기고 저녁에 데리고 온 다는걸 알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 몇 개월 후부터 아이가 고모집에 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욕은 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 딴넘 만나서 이 동네 떠나라고, 우리 아이는 본인이 잘 키울 꺼니까 만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더니 그렇게 쉽게 우리아이를 또 내팽개 치냐는 생각에서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나는 알 수가 없지만, 단편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는 나는 시누를 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꺼 그렇게까지 말하지 말지. 그럼 나도 우리아이 잘 부탁한다고 납작 엎드렸을 껀데, 서로가 그렇게 악담을 퍼붓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 누구도 승자가 없는 싸움이었는데 말이다. 그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욕을 했던 것일까. 왜 그렇게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 달이었을까.
보편적인 사람들의 보통의 삶은 TV속 드라마도, 예능도 아니다.
나의 이혼은 TV속 예능처럼 쿨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으며, 그저 서로 못 잡아 먹어 안 달인 끝없는 진흙탕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