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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미영 Oct 30. 2022

8. 5분만에 정리되는 사이

이혼이라는 걸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 

아마 가장 큰 것이 경제력일 것이고, 수 많은 주위 시선도 신경쓰일 것이다. 혼자서 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당연히 될 것이다. 

하지만, 이혼해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온 후로 단 한번도 그 생각에 대해 흔들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생각했던 시기에 비해 실제 이혼을 했던 시기는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결혼 후부터 내 맘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혼’ 이라는 것이 현실화 되어 가고 있엇다. 


이혼 신청을 하고 3개월 의 조정기간이 있은 후 법원에 출석하는 날이었다. 

법원에서 만난 남편과는 이렇다 할 인사도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디스크 수술 후 친정에서 요양중이었고 아이를 생각하며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다시 데려올 여력도 없었으며, 이혼을 되돌 릴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혼 결정을 위해 출석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주말이면 결혼식장에 시간 타임별로 예식을 준비 중인 사람들의 명단이 기재 되어 있듯이 이혼법정 앞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혼결정을 하기 위한 대기자 명단이 기재되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관찰하며 부류가 나뉘어 지는 걸 보았다. 정말 꼴보기도 싫다는 듯이 끝과 끝에 서로 의식 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저 사람들은 왜 이혼을 할 까 싶을 정도로 다정하게 앉아, 하물며 편안한 미소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가운데 한칸을 비워 둔 채 떨어져 앉아 각자 휴대폰만 들여다 보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혼이라 하면 뭔가 굉장히 엄숙하고 뭔가 절차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도 쉽게 허무하게 끝이났다. 

그날 그 시간대에 이혼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대기석에 기다리고 있었고, 순서가 되면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두 사람이 판사 앞에 가서 서게 되고 본인 확인을 한다. 각자 이름과 생년 월일을 말하고, 그럼 판사는 인적 확인 후 친권은 누가 가지는지, 양육권은 누가 가지는 기재된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 한다. 그러면 우리는 “네”라는 대답을 하고 나면 날짜를 말씀해 주시고 이혼이 확정 되었다고 말씀 해주시면 앞에 계신 분이 이혼 확인서를 주신다. 그럼 그걸 가지고 나오면 끝이다. 


말이 5분이지 실질적으로는 5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4년 6개월 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 했지만, 46년을 살고 이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세월에 비해 이혼이라는 결정은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쉽게 결정이 난다. 어쩌면 그 시간들 속에 고통을 알기에 이혼이라는 과정속에 더 치열하게 진흙탕 싸움을 했을 것을 알기에 그렇게 간단하게 빨리 끝내 주는 것은 아닐까. 서로 얼굴 보고 웃을 사이는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법원에서 나와 바로 관할 구청으로 향했다. 나는 우리집을 지켜야 했으니까 말이다. 차일피일 미루면 남편이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구청으로 가 이혼 확인서를 제출하고 이젠 서류상으로도 남남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서류를 가지고 LH공단으로 가 이혼에 의한 소유권을 이전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했다. 


LH공단에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발급 받았었다. 늘 3줄의 내용이 있었는데 단 한줄의 내용만이 있다. 마음이 스산했다. 이젠 정말 서류상에도 나는 혼자이구나 하고 말이다. 


나는 이혼을 하면서 친권,양육권 모두 남편에게 넘겼다. 이혼 전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았을 때 친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친권의 법적 효력이 필요한 경우가 2가지가 있다고 했다. 미성년자인 아이가 해외에 가야 하는 경우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아이가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 동의서 작성시에 필요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친권을 바로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경우도 아니고 수술이라는데 말이다. 내가 어떻게 친권을 주장하겠는가. 앞으로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우리아이는 보통의 사람보다는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이 발생 할 수 있는 아이다. 혹여 내가 늦어 동의서 작성을 못 하게 될 경우 우리아이의 생명이 위험 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권도 양육권도 모두 포기했다. 


일반적인 이혼의 경우에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혼 후 친권,양육권이 없는 경우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 할 때 일반으로 발급 할 경우 자녀가 기재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통상적으로 등본을 발급 받을 경우는 종종 잇지만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 받을 일은 잘 없었기에 그동안 확이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할 경우가 있었다. 무인발급기로 발급 신청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장 위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서 내 손에 들려진 서류 한 장을 바라보며 나는 눈물이 흘렀다. 분명히 내 배 아파서 낳은 아이고, 내 목숨 걸고 지켜낸 내 아이인데,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내 아이인데, 나도 알고, 아이도 알고, 주변 사람들도 다 아는 내 아이인데… 서류는 아니라고 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아이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생모라는 관계일 뿐 사람으로 정의 되어 버렸구나 하고 말이다. 


친권자도, 법정대리인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어떠한 동의서에도 서명을 해 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서류 한 줄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하겠지만, 자격지심이겠지만 그 서류 한줄의 슬픔이 나에겐 크게 다가왔다. 아이가 없어져 버린 그 서류가 싫어 상세 발급으로 다시 발급 받았다. 그랬더니 자녀라는 칸과 함께 아이의 정보가 나왔다. 상세하게 보아야만 볼 수 있는 내 아이, 그 서류의 한 줄의 슬픔은 또 다른 어떠한 상황에서 또 다른 슬픔으로 다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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