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말경 남편이 집에서 나갔다. 그럼에도 아이와 나의 생활은 그리 달라진 건 없었다. 늘 우리 두사람에게 남편의 자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와 나의 생활은 이어졌고,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온통 집중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발달지연에 대한 아이의 치료는 1년 반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이제 무언가 조금은 나아지고 있는 걸까 하고 있던 찰나에 불행은 또 어김없이 나의 뒷통수를 쳤다.
어느 날 학습지 선생님이 아이의 눈이 좀 이상하다는 것이다. 평소대비 깜빡임이 심하고 얼굴 찡그림도 있다며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 느낌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아이의 ‘틱 장애’가 진단 되었다.
이 아이는 항상 모든 감정을 몸으로 받아 내는 아이였다. 발달 지연도 있었고 엄마에 대한 분리불안도 심한 아이였다. 항상 내 몸 어딘가는 만지고 있어야 했고, 내가 화장실에 갈 때는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고, 설거지를 할 때에는 씽크대 아래에서 끝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이였다. 내가 정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잠도 자지 않는 아이였다. 불안 지수가 높아 어린이집을 다닌 3년 동안 낮잠이란 걸 단 한번도 잔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집에서라도 좀 쉬고 낮잠을 자게 하려면 항상 내가 업고 있어야 했다. 내가 불안감이 심해지거나 몸이 아프면 따라서 아픈 아이였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또래에 비해 몸집도 작고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게 나간다지만, 아이의 나이가 5살이었다. 그럼에도 신생아들이 하는 아기띠에 쏙 들어가는 몸이라 내가 업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몸과 마음을 쉬게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5살짜리가 하루에 길어야 5시간 정도 밖에 자지 않았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더 재워애 했다. 언제 또 아파 병원에 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에서라도 말이다.
나는 23살때 이미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꽤 무리를 하기도 했지만 임신을 하고 양수과다증이 오면서 허리가 버텨내지 못 했다. 그러다 3일을 진통을 하면서 허리가 나가 버렸다. 거기에 아이가 한달을 입원을 하며 병원 생활을 하며 산후풍이 오고 디스크가 재발 했다. 그럼에도 나는 진통제를 먹고, 신경주사를 맞으며 아이를 업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유독 과했고, 유별 났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또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그것 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발달지연으로 치료도 진행되고 있는데 틱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왜 항상 나에게 이런 힘든 상황만 주어지는 것 일까. 내가 전생에 뭘 그리 잘 못 한걸까. 혼자 내팽겨 쳐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 극심하게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오면서 2개월 만에 10kg이나 빠져 버렸다. 갑자기 살도 빠졌고 여전히 아이는 내 등에 업혀 있었다. 몸과 마음이 버텨내 주질 못 했다.
그런다 남편이 나간 후 4개월 정도 후쯤 전화가 왔다. 그 기간 동안 술에 취해 아이 안부 전화 한 번 한게 끝이었던 사람이 낮에 전화가 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혼을 하자는 것이었다. 전혀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는데 내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 하나 있었다.
“ 여자 생겼어?” 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남편의 대답은 간결 했다. “응”
그리고 나는 생각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처음 별거를 하자고 한 후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생겨도 이혼은 아이가 학교 들어 가고 나면 하자고 말이다. 그런말을 한 사람이 불과 4개월 만에 이혼을 하자고 한다.
이혼을 하자는 것에 화가 난게 아니라 본인 말에 대해 한치의 거림낌도 없이 그 말을 꺼낸 남편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더 더욱 해주기 싫었다. 그리고 며칠 되지 않아 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혹시 남편이 연락이 와서 요즘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캐물었다는 것이다. 여자쪽에서 결혼을 서두르는데 내가 이혼을 해주지 않을 것 같다며 약점이라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더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양육비 말이다. 그전에도 약속한 양육비를 보내 주긴 했지만 이혼 얘기가 나온 후로는 몇일 씩 날짜가 지연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꼭 내가 달라고 해야만 보내주었었다.
그러다 9월달이 되었고 추석 연휴가 끝나면 서류작성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사건이 발생했다. 추석연휴가 끝나던 마지막 날 밤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허리속 무언가자 찢겨 지는 듯한 통증으로 쓰러졌다. ‘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쓰러졌고 옆에 있던 아이는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어 웃다가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가 놀라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달래고 재운 후 통증을 밤을 지새고 다음날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운 후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우리집은 주택2층에 있는데 계단을 다 내려와 1층 마당을 지날 때쯤 전날 밤 느꼈던 그 통증을 느끼면 마당에 쓰러졌다. 이번에는 정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병원에 가기 위해 나오던 길이라 핸드폰이 바로 손 닿는 곳에 있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오시는데 1시간 가량 걸리니 119를 부르라는 것이었다. 119에 전화를 하고 대문을 열어 줄 수도 없어 문을 따고 구급대원들이 와 주셨었다. 들 것에 들리는 순간에도 미친 듯이 비명이 나왔고 원래 처음 수술 했던 병원으로 가야 했으나 조그마한 진동에도 통증이 심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23살때에는 왼쪽 디스크를 수술 했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디스크가 문제였다. 꼬리뼈쪽에 구멍을 내 관을 삽입해 진행하는 시술도 진행했으나 전혀 호전이 없었다. 남은 건 수술 뿐이었다. 2번째 수술이라 위험도가 있어 그 병원에서는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처음 수술 했던 병원으로 가서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상황에 남편의 양육비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몇 차례 독촉 했음에도 들어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싸움은 또 시작 되었다.
이번에 수술을 하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것도 왼쪽, 오른쪽 모두 디스크 수술을 한 상태에서, 나이도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더 없는 상태다. 거기에 남편이 양육비까지 이렇게 늦게 주고, 매번 독촉해야 하면 아이와 나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며 따졌다. 그랬더니 남편의 대답은 “내 돈으로 내 자식 키우라고 준 거지 너 쓰라고 준 돈 아이다”라는 것이다. 양육비가 무엇인가. 아이를 양육하기 위한 전반적인 돈이다. 아이도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도 함께 사용하기 위한 돈이라고 알고 있다. 남편도 화가 난 상태였겠지만 “이젠 내돈으로 내 자식 내가 키우께” 라고 하는게 아닌가.
거기에서 화가 났다. 언제부터 본인 자식이었던가. 5년동안 내팽겨 쳐 놓고 이제 와서 본인 자식이란다. 그리고는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거다. 내가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키워 온 아이인데, 이제 와서 내 놓으란다. 아마 그걸 알기에 더 아이를 데리고 가려 했을 지도 모른다. 이혼 얘기를 꺼내고 4개월 가량 지난 상태였기에 나에게서 전부인 아이를 데리고 가면 내가 바로 이혼을 해 줄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서 전부인 아들을 2017년 10월 23일 데리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