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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꿀 5g 09화

달팽이 편지

by 조현미





할머니 손가락에 달팽이가 산다

아침 해가 뜨기 전 슬그머니 집을 나와

산 너머 밭을 향해 뽈뽈 뿔뿔 기어간다

손바닥만 한 비탈밭 갉작갉작 일구다가

아침이슬 한 모금에 타는 목을 적시고

햇살 쨍한 한낮에는 낮잠을 자다가

─ 할머니 편지 왔어요,

우체부 아저씨 부르는 소리에

팽그르르 집을 말아 한달음에 달려간다 `

눈 밝은 까치 이장님 편지를 읽어주면

가늘고 긴 목을 빼 눈물 찔끔 흘리다가

배춧잎에 빼곡 답장을 쓴다

할미는 잘 있단다,

집도 밭도 잘 있단다

눈멀고 귀 먼 할머니 온몸으로 써 내려간

삐뚤빼뚤 손글씨

달팽이 손글씨

한 줄 쓰고 눈물 찔끔

한 줄 읽고 콧물 찔끔

배춧잎이 다 젖었다

편지지가 다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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