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 년이 흘렀어도 줄 건 줘야한다.
임대차계약 종료 후,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도 소멸시효가 진행될까?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대차계약에서 그 기간이 끝난 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진행하는지 여부
우리는 싫든 좋든 관계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곳이 아파트인지 일반주택인지와 내 소유인지 빌려서 살고 있는 것이지만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 주택보급율이 100%가 넘어 간지는 이미 꽤 오래 전 일임에도 주택, 특히 아파트의 소유욕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정부정책의 대표적인 화두는 언제나 부동산 그 중에서도 아파트 공급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이야기는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 겪는 부침과 같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에서 살고 싶던 다복씨. 그런 다복씨는 복순씨의 다가구주택 1층에 전세로 살고 있으면서, 퇴근 후 소위 말하는 투잡 그리고 주말 등 휴일을 활용해 짬짬이 부업까지 하고 있었다.
그 이유와 목표는 단 하나였다. 내 집 마련.
하루를 이틀처럼, 이틀을 일주일처럼 잠을 쪼개가며 요즘 N세대들이 추구하는 워라벨을 포기하면서까지 악착같이 버텨온 다복씨에게 못된 병마가 찾아들었다.
-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지... 왜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몸을 가누기 힘들어진 다복씨는 병상에 누워있으며 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또 버티며 나지막하게 읊조리기를 반복하며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다복씨가 안타까우면서도 자신의 권리행사를 다하지 못한 점에 약간은 억울한 마음이 드는 복순씨는 다복씨에게 이제 그만 자신의 집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다복씨 미안하지만 집을 좀 비워줘야겠어. 나도 시세대로 받아야지 언제까지 봐줄 수만은 없잖아요.”
“주인아주머니 제 사정 좀 봐주세요. 이 상태로 어디가서 집을 구할 수 있겠어요?”
“사정은 딱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으니 기한 내 집을 비워줘요. 부탁해요.”
“아주머니, 아.주.머.니.”
매몰차게 문을 닫고 나가는 주인아주머니를 향해 다복씨가 있는 힘껏 사정을 해보지만 복순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상황이 심각해진 다복씨는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고 혼자서 화장실조차 가기에도 버거운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주인아주머니인 복순씨는 다복씨가 측은해서 더 이상 집을 비워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흘러 어느 덧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마침 기적처럼 회복한 다복씨. 다복씨는 그간 집주인으로 제대로 권리행사를 하지 않고 배려해줬던 복순씨가 한없이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회복한 몸을 추스르고 이사를 가고자 한 다복씨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며 전세보증금을 반환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아니 그간 이것저것 올리지 않고 관리비도 주지 않았잖아. 그리고 이미 십 년 전에 전세기간이 만료된 것도 통보했었고 내어줄 돈이 없어. 어디 정부에서 지원하는 요양원이나 알아봐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니요?”
“나도 알아봤는데 이미 시효가 지나서 안 줘도 된다고 그러던데?”
“아니 누가 그래요? 제 돈은 주셔야죠? 전 받아야겠습니다.”
“십 년 넘게 배려해 준 집주인에게 이게 무슨... 맘대로 해요!”
결국 고마움은 고마움대로 묻어두고 다복씨는 시효가 다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집주인인 복순씨를 상대로 전세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과연 다복씨는 집주인인 복순씨가 주장하는 소멸시효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먼저 집주인인 복순씨가 주장하는 소멸시효란 뭘까?
소멸시효는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권리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경우에 권리가 소멸되는 법률효과가 발생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법률관계가 점점 불명확해지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로 일정 기간 계속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곤란해질 수 있는 증거보전으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고 또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사람을 법적 보호에서 제외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기하고자 함에 있다. 이 사건에 빗대어 볼만한 격언이 있다.
‘법은 권리위에 잠 자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상태의 시효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사실상태가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즉, 이 사건의 채권자(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사람)인 다복씨가 채무자(돈을 돌려줄 사람)인 복순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요청이 지속적으로 일정기간 없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집주인인 복순씨는 임대차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지 않은 다복씨가 소멸시효에 걸려 채권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원심 재판부는 집주인인 복순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즉, 담당 재판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임대차계약에 따라 보증금을 지급하고 임차주택에 입주한 원고가 임대차기간이 끝난 후에 임대인인 피고로부터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임차주택을 계속하여 점유해오다가 임대차기간이 끝난 때로부터 약 14년이 경과한 시점에 피고를 상대로 보증금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한 사안에서, 임대차기간이 만료된 때부터 보증금반환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보아 원고 다복씨의 보증금반환채권은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당시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는 이유로 원고 다복씨의 본소 보증금반환청구를 기각하였다.
“어때요 다복씨 내말이 맞죠? 기한을 좀 넉넉하게 줄테니 어서 요양원이나 알아보세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태도는 달랐다.
임대차 계약이 종료함에 따라 발생한 임차인 다복씨의 목적물 반환의무와 임대인 복순씨의 보증금 반환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또한 임차인인 다복씨가 임대차 계약종료 후 동시이행항변권을 근거로 임차목적물을 계속 점유하는 것은 임대인인 복순씨에 대해 보증금반환채권에 기초한 권능을 행사한 것으로서 보증금을 반환받으려는 계속적인 권리행사의 모습이 분명하게 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대법원 1977. 9. 28. 선고 77다 1241, 대법원 1995. 7. 25. 선고 95다 14664, 14671 판결 등 참조)
더 나아가 대법원은 만일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여 적극적인 권리행사의 모습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보증금반환채권이 시효로 소멸한다고 보면, 임차인은 목적물반환의무를 그대로 부담하면서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반환채권만 상실하게 된다. 이는 보증금반환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임대인이 목적물에 대한 자신의 권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증금반환채무만을 면할 수 있게 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법원의 태도
대법원 2016다244224(본소), 2016다244231(반소) 판결
소멸시효 제도의 존재이유와 취지, 임대차기간이 끝난 후 보증금반환채권에 관계되는 당사자 사이의 이익, 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 제2항의 입법취지 등에 비추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대차계약에서 그 기간이 끝난 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 보증금반환채권에 대한 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