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왓 우몽에서 도이 스텝까지, 치앙마이 여정의 완성

- 도이 스텝, 치앙마이의 영혼을 만나다 -

by 마르코 루시

도이 스텝(Doi Suthep) 사원, 정확히는 왓 프라탓 도이 수텝(Wat Phra That Doi Suthep) 사원에 오르지 않는것은 마치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지 않고, 로마에서 콜로세움을 지나치는 것과 같은 실수다. 치앙마이 여행에서 도이 스텝을 빼놓는다는 것은 이 도시의 영혼을 만나지 않고 떠나는 것과 다름없다. 치앙마이 대학교 후문 너머로 걷는 발걸음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 달간의 일상이 마침내 완성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온몸이 감지하고 있다. 도이 스텝 전에 왓 우몽(Wat Umong)이 있어, 왓 우몽으로 먼저 향한다. 왓 우몽으로 향하는 숲길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귀에 들린다. 이곳에서는 시간조차 다른 리듬으로 흐르고 있다.


왓 우몽의 어둠 속에서 시작되는 이 마지막 순례는 치앙마이라는 도시와의 진정한 작별 의식이다. 14세기 란나 왕국 시대에 승려들의 깊은 수행을 위해 산속에 조성한 이 터널 사원은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내면을 들여다보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미로 같은 터널 안에서 불상들이 고요히 명상에 잠긴 모습을 바라보며, 한 달간 치앙마이에서 경험한 모든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구시가지의 왓 체디 루앙에서 느꼈던 경외감, 님만해민 카페에서 보낸 나른한 오후들, 선데이 마켓의 활기찬 저녁들. 왓 우몽의 서늘한 터널 속에서 이 모든 기억들이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로 엮여간다. 연못가에서 수천 마리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순간, 한 달간의 치앙마이 생활이 드디어 절정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음을 직감한다.


늦은 오후의 맑은 파란 하늘 아래, 도이 스텝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306개의 나가(Naga) 계단 양편으로 펼쳐진 정교한 조각상들이 오후 햇살을 받아 생생하게 살아난다. 뱀신 나가의 몸통을 따라 새겨진 섬세한 비늘 하나하나가 마치 숨을 쉬는 듯 보이고, 계단 난간을 따라 흐르는 나가의 곡선은 천상으로 이어지는 무지개다리처럼 우아하다. 열대 식물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사이로 이어지는 계단길은 마치 고대 정글 속 잃어버린 왕국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 같다. 야자수와 바나나 잎들이 만들어내는 초록 터널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계단 위에 황금빛 물결을 그려낸다. 각 계단을 오를 때마다 치앙마이 평원이 발아래로 펼쳐지고, 한 달간 생활했던 그 익숙한 거리들이 점점 작아져 간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단순히 높이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간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승화시키는 의식적 행위가 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어둠이 찾아오면서 도이 스텝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자 주간의 화려함이 야간의 환상으로 변모한다. 황금빛 체디가 깊고 짙은 코발트블루 하늘을 배경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14세기 란나 왕국 시대부터 부처의 사리를 모셔온 거대한 체디 주변으로 배치된 황금 불상들이 조명을 받아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연꽃 자세로 앉아 명상에 잠긴 불상들의 자비로운 미소가 황금빛 후광 속에서 더욱 신성하게 빛난다. 정교한 우산 장식들이 조명을 받아 레이스처럼 섬세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사원 곳곳의 장식들이 금박을 입은 듯 눈부시게 반짝인다. 이 순간, 란나 왕국 700년 역사의 모든 기예와 신앙이 하나의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완성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산정에서 내려다본 치앙마이 야경은 또 다른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는 하늘 아래, 치앙마이 시내의 불빛들이 별자리처럼 반짝인다. 핑강을 따라 펼쳐진 도시의 격자무늬가 빛의 강물처럼 흘러가고, 저 멀리 산자락까지 이어진 불빛들이 지상의 은하수를 이룬다. 그동안 걸었던 그 길들, 머물렀던 그 공간들이 이제 하나의 거대한 빛의 지도가 되어 발아래 펼쳐져 있다. 도이 스텝의 황금빛 조명과 치앙마이 시내의 하얀 불빛들이 어우러져 천상과 지상이 만나는 신비로운 순간을 연출한다.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왜 모든 치앙마이 여행자들이 도이 스텝을 필수 코스로 여기는지, 왜 현지인들이 "도이 스텝을 오르지 않고서는 치앙마이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하는지 완전히 이해된다. 도이 스텝에서 내려다본 이 환상적인 야경 속에서 치앙마이 여행이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깊은 만족감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치앙마이를 떠나더라도 이 순간의 빛과 평화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27화미슐랭이 사랑한 치앙마이 거리의 로티, 그 맛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