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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존재와 따뜻한 터치, 치앙마이 코끼리 체험

- 60년을 살아온 거대한 친구, 치앙마이 코끼리와의 교감 -

by 마르코 루시

아침 9시, 치앙마이 시내에서 1시간 30분 거리. 엘리펀트 정글 생츄어리 Camp7 간판 앞에서 들리는 건 오전 정글의 숨소리다.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사이로 멀리서 들려오는 코의 울림. 그것은 트럼펫도, 경적도 아닌 거대한 생명체가 내뿜는 기쁨의 선언이다. 갈색 나무 간판 위로 떨어지는 아침 햇살이 'PARKING' 글자 위의 코끼리 가족사진을 비추며, 초록빛 야자수 잎새들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콘크리트 바닥에 흩어진 마른풀들과 자갈 사이로 보이는 나무 구조물 너머로 공기 중에 섞인 흙냄새와 바나나 향이 60세 고령 코끼리의 존재를 예고하고 있다.


700년 전 핑강 유역에 꽃 피운 란나 문명의 심장부에서 코끼리는 단순한 동물 이상이었다. 태국어로 '창(Chang)'이라 불리는 코끼리는 나레수엔 왕이 1592년 미얀마 침입군을 물리칠 때 함께 전장을 누빈 전우였고, 무거운 통나무를 코로 감아 옮기며 도시 건설에 참여한 동반자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교적 의미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겨드랑이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인구의 95%가 불교도인 이 나라에서 코끼리는 신성한 동물이자 복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존재가 되었다. 부처님을 코끼리들의 왕에 비유해 '상왕(象王)'이라 부르는 것처럼, 코끼리는 지혜와 자비, 힘을 상징한다. 그래서 치앙마이 곳곳의 사원과 성곽, 호텔과 기념품점, 심지어 택시와 관광버스에까지 코끼리 조각상과 그림들이 넘쳐난다. 1998년부터 매년 3월 13일을 '코끼리의 날'로 정할 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들은 단순한 관광 상품이 아닌, 복과 행운을 불러오는 신성한 메신저인 셈이다.


갈색 등나무 바구니 안에 가득 담긴 황금빛 바나나들이 치앙마이 햇살 아래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옆 바구니의 수박들은 짙은 녹색 줄무늬가 마치 지구본처럼 둥글게 돌아가며 무게만으로도 거대한 코끼리의 하루 식사량을 짐작케 한다. 하얀색과 연한 블루 투톤 상의를 입은 가이드가 웃으며 바구니를 건네며, 손짓과 목소리로 코끼리가 입을 벌리고 코로 인사하도록 하는 소통법을 보여준다. 하루 20시간을 먹는 데 사용하며 100kg에 육박하는 식사량을 소화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 순간은 단순한 먹이 시간이 아닌 진정한 교감의 시작이며, 머드 스파를 함께 하고 강가에서 목욕을 시켜주는 체험 속에서 인간과 코끼리 사이의 특별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오전 햇살 아래서 만난 60세 코끼리의 눈은 예상보다 작았다. 인간으로 치면 80대에 해당하는 고령의 거대한 몸집에 비해 의외로 섬세한 그 눈동자 속에서 지혜와 온화함이 동시에 번득인다. 코의 끝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의 따뜻함. 거친 피부 질감 너머로 전해지는 생명의 온도가 예상보다 부드럽다. 관광객이 내민 바나나를 코 끝으로 정확히 집어 올리는 모습에서는 60년간 인간과 함께 해온 학습된 신뢰가 읽힌다. 하지만 가끔씩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원시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야생에 대한 그리움도 감지된다. 치앙마이의 Elephant Nature Park와 같은 윤리적 보호구역들이 확산되면서 동물이 착취당하지 않고 잘 돌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완벽한 해답은 없다. 관광객의 체험료(690바트)가 코끼리의 사료비가 되고, 소수민족의 일자리가 되며, 다시 지역경제로 순환되는 생태계 속에서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 코끼리의 거친 이마에 손을 얹고 그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는 순간, 단순한 감동을 넘어 책임감이 밀려온다. 60년을 살아온 이 거대한 생명체와의 교감은 터치를 통해 완성된다.


엘리펀트 정글 생츄어리를 떠나며 뒤돌아본 갈색 간판 위의 코끼리 그림이 다르게 보인다. 더 이상 귀여운 캐릭터가 아닌, 60년을 살아온 실존적 존재로 다가온다. 서구에서 '흰 코끼리'가 처치 곤란한 존재를 뜻하는 관용어가 된 역사처럼, 현대의 고령 코끼리도 인간에게는 '성가신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치앙마이에서 만난 60세 코끼리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그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진정한 공존이란 무엇인가? 관광이 보호가 될 수 있는가? 전통문화와 동물복지는 양립할 수 있는가? 돌아가는 밴 안에서 창밖으로 스쳐가는 치앙마이 풍경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여행이란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60년을 산 코끼리의 트럼펫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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