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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화이트 마켓과 핑크 캄온의 마법

– 색으로 감정을 짓고, 형태로 기억을 채우는 치앙마이 두 공간 -

by 마르코 루시

주말 오후, 치앙마이 님만해민 거리, 안에서도 가장 감각적인 복합문화 공간 원님만 바로 옆길에 보도를 따라 하얀색 지붕을 가진 가판대들이 쭉 늘어져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곳은 매주 주말, '화이트 마켓'이라는 이름의 작고 조용한 풍경화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Happy White Market'이라 적힌 현수막 아래에는 "いらっしゃいませ"(이라샤이마세)라는 일본어가 적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라는 의미다. 태국어도 아니고 왜 일본어가 있을까 의아해했지만, 이 마켓이 형성된 이유를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이트 마켓은 일본인 거주자들이 수공예품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소박한 장터였다. 지금은 치앙마이를 찾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게 되는 감각적인 주말 시장이 되었다. 아기자기한 팔찌를 고르는 사람들, 이국적인 향신료를 시향 하는 여행자들, 반려견을 안고 천천히 거리를 걷는 외국인 거주자까지, 이곳은 주말 오후에 또 하나의 얼굴로 살아나는 치앙마이의 산책길이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감각적인 마켓의 풍경이다. 흰 천막이 나란히 늘어선 골목에는 란나 스타일의 수공예품, 핸드메이드 귀걸이, 천연 허브 오일, 그리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따뜻한 미소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파란색 란나 문양이 새겨진 소박한 수공예 가방은 어쩐지 치앙마이라는 도시 자체 같았다. 겉보기엔 소박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깊고 유서 깊은 결이 살아 있었다.


화이트 마켓을 뒤로하고 길 건너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처럼 핑크빛 건물이 서 있다. '캄온(คำออน Kham On)’이라 불리는 이 공간은 화이트 마켓의 소박한 흰색과는 정반대의 색채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핑크, 핑크, 온통 핑크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카페도 아니고, 전시장도 아니다. 아마 태국에서 가장 독특한 '기도'의 공간일 지도 모르겠다. 붉은등들이 매달린 계단을 따라 핑크색 공간 안으로 천천히 들어서자, 대리석 석상들 사이에는 작은 제물이 놓여 있었고,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은 왠지 모를 신비로움이 마음을 감싼다. '무엇을 소원하시나요?' 하고 조용히 되묻는 듯한 시선이 공간 이곳저곳에 머물렀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다녀갔겠지만, 누구나 하나쯤은 마음속에 조용히 접어둔 소원을 남기고 떠났을 것이다. 사랑, 건강, 혹은 그저 오늘 하루가 무사하길 바라는, 나름의 기도 말이다. 캄온은 사원은 아니지만 신성함이 있고. 종교적이지 않지만 영적인 순간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은 신을 모시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을 연출하는 무대에 가까웠다. 인도와 태국의 제의적 상징을 차용해, ‘소원을 빌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한 감각적 공간으로 디자인된, 현대적 기도 포토존이었다.


캄온의 독특한 공간 디자인을 느끼며 골목을 빠져나오는 것이 미지의 세계에서 잠시 머물렀다 빠져나오는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두 공간을 반으로 갈라 놓은 듯한 도로 한복판에서 두 곳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삶을 물건으로 표현한 시장과, 마음을 조형물로 드러낸 기도의 공간. 이 두 공간은 전혀 달랐지만, 묘하게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손에 쥔 것은 단순한 수수한 수공예 가방 하나였지만, 안에는 마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 감정이 들어 있었다. 치앙마이는 그렇게, 말없이 누군가의 기도에 응답하는 도시처럼 보인다.


화이트 마켓과 캄온. 서로 다른 결을 지닌 두 공간을 지나며, 삶의 리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손끝의 온기를 나누는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속 조용한 소원을 머무르게 하는 기도의 공간이다. 무엇을 사기 위해 들렀던 시장에서 삶의 결을 느끼고, 무엇을 믿기 위해 머문 기도방에서 오히려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아이러니다. 어쩌면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두 공간 사이 어딘가,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서는 일이다. 다음 여행지가 어디든,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이 도시를 여행하는 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쩌면 모두가 같은 질문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낯선 거리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았고, 무엇을 아직도 붙잡고 있는가. 치앙마이의 거리들은 색을 통해 감정을 배치하고, 재료를 통해 기억을 수납한다. 여행자는 걷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공간이 건네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삶은 결국 어떤 결로 짜이고 있는가를 묻는, 감각적인 직조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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