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야, 센트럴 페스티벌, 그리고 에어포트 몰 -
님만해민 로터리에서 유리 건물의 외벽이 태양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인다. 마야 라이프스타일 쇼핑센터의 메탈릭한 격자 무늬 표면은 마치 거대한 우주선처럼 주변 풍경을 변화시킨다. 건물 주변을 맴도는 툭툭이의 배기가스 냄새와 인근 카페에서 풍겨오는 로스팅 커피 향이 뒤섞이며, 6층 건물의 루프탑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음악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내려온다. 이 모든 것이 이곳이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치앙마이의 새로운 문화적 아지트임을 알려준다. 마야몰을 둘러싼 님만해민 일대의 골목마다 흘러나오는 이국적 음악과 다양한 여행객들의 대화 소리는 이 도시가 전통과 현대,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서 찾은 절묘한 균형점을 보여준다.
치앙마이의 쇼핑 지형도는 1990년대에 공항 인근에 문을 연 센트럴 치앙마이 에어포트 몰을 시작으로 새롭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치앙마이 최초의 대형 쇼핑센터로, 란나 왕조의 고도에 서구식 소비문화가 본격 상륙한 상징적 장소였다. 2013년, 치앙마이 동북쪽 슈퍼하이웨이를 따라 등장한 센트럴 페스티벌은 250개 이상의 매장과 '미래를 향한 란나' 디자인으로 북부 태국 최대 규모의 쇼핑 복합체가 되었다. 같은 해 님만해민에 들어선 마야몰은 6층 규모로 치앙마이 대학가 젊은이들의 트렌드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이 세 공간은 각각 1990년대의 실용주의, 2010년대의 웅장함, 그리고 젊은 감성의 세련됨을 대변하며 치앙마이 소비문화의 변천사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 발걸음으로 이 세 개의 쇼핑몰을 순회하면,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가장 놀라운 곳은 센트럴 페스티벌의 지하 푸드 코트다. 높은 천장이 주는 거대함을 느끼는 순간, 아래로 향한 눈길에는 다채로운 가판대 지붕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야시장에서 봤던 온갖 치앙마이 음식들이 그대로 지하 실내로 옮겨온 느낌이다. 오히려 더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종류가 너무 많아 하나의 음식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릴 정도다. 올드시티에서 느낄 수 없는 현대적인 감성의 쇼핑센터 내 미식 여행은 또 다른 볼거리이자, 미각을 자극하는 여행의 순간이다. 무엇보다 뜨거운 햇살과 습한 날씨를 피해 잠시 쉬어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에어포트 몰은 개장 이후 리노베이션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오래된 쇼핑몰 특유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 1층 중앙홀에는 지역 공예작가들이 운영하는 팝업 부스와 북부 전통 직물을 판매하는 매장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로빈슨 백화점과 연결된 구역에는 태국 로컬 브랜드가 주를 이룬다. 건물 뒤편으로는 실외 야시장 형태의 마켓이 주말마다 열리고, 여행자를 위한 환전소와 짐보관소 그리고 휴대폰 유심 판매점이 운영 중이다. 공항 활주로에서 가까워 주차장 위로는 수시로 항공기가 낮게 비행하며, 공항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몰 입구에 정차한다. 새롭거나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바로 그 점에서 치앙마이의 '옛 정서'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마지막 쇼핑과 식사를 마치며 천천히 치앙마이와 작별을 준비한다. 특히, 주말 실내 시장은 평소에 돌 수 없는 다양한 로컬 음식들과 상인들이 지하 공간을 가득 메워 흡사 일반 시장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물론 음식들은 신선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세 쇼핑센터를 오가며 관찰하게 되는 것은 공간이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시간의 리듬이다. 마야몰 루프탑에서 해 질 무렵 치앙마이 야경을 바라보는 젊은 커플들의 여유로운 대화, 센트럴 페스티벌 광장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무대공연과 푸드스트리트의 활기, 에어포트 몰에서 마지막 기념품을 고르며 여행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아쉬운 표정까지. 각 공간은 고유한 정서적 톤을 갖고 있고, 방문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분위기에 맞춰 걸음을 조절하고 시선을 돌린다. 치앙마이라는 도시의 다면적 성격이 이 세 쇼핑 공간을 통해 한눈에 읽히는 순간이다.
결국 치앙마이의 세 쇼핑몰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넘어서, 한 도시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변화시켜 왔는지를 체험하는 일이다. 마야의 젊음, 센트럴 페스티벌의 웅장함, 에어포트 몰의 향수는 각각 치앙마이의 과거, 현재, 미래를 대변한다. 여행자는 이 세 공간을 순회하며 란나 왕조의 고요한 전통과 글로벌 도시의 역동성, 그리고 로컬 문화의 끈질긴 생명력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치앙마이의 모습을 목격한다. 쇼핑백을 든 손보다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느낀 시간의 질감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다. 여행이란 결국 새로운 장소에서 발견하는 시간의 다양한 속도들을 경험하는 일이며, 치앙마이의 쇼핑 공간들은 그 완벽한 실험장이 되어준다.
이 세 공간을 모두 경험한 여행자들은 마지막 속도 위에 서게 된다. 그동안 치앙마이가 건넨 수많은 골목과 냄새, 음악과 눈빛들이 하나의 리듬이 되어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이 도시의 쇼핑몰 세 곳을 음미하는 시간조차, 그 모든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듯하다. 님만해민 야외 카페에서 바라본 이 도시의 불빛은 작별을 준비하는 여행자에게 마지막 안부를 전하고, 마야몰 앞의 분수는 여행자의 지나온 시간을 배웅하듯 춤을 춘다. 앞에 놓인, 갓 내린 커피 한 잔의 향기는 천천히 치앙마이를 음미하게 한다. 이 도시가 가르쳐주는 것은 삶의 모든 순간이 고르지 않은 박자 위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빠르지 않아도 좋고,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속도를 스스로 느끼고, 걷는다는 것이며, 그런 도시가 마음에 늘 있다는 것이다. 각자만의 리듬으로 걸을 수 있는, 아주 느리지만 선명한 그런 하루가 모든 여행자에게 있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