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만의 속도를 찾기 위한 한 달간의 여정 -
30번의 새벽이 지나고,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인천행 항공편 알림이 현실을 상기시키지만, 손끝은 여전히 님만해민 카페의 따스한 머그잔을 기억하고 있다. 왓 체디 루앙의 코끼리 석상들이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치앙마이 카오소이 냄새와 에스프레소 향이 뒤섞인 공기를 마지막으로 들이마신다. 한 달, 정확히는 30일간의 치앙마이 살이가 막을 내린다. 지금 이 순간, 치앙마이가 건네는 마지막 속삭임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 시작은 단순했다. 치앙마이 한 달 살이, 숙소가 결정하는 여행의 품격을 믿었고, 맛집은 줄 서는 시간이 말해준다는 진리를 체험하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은 언제였을까. 치앙마이 코코넛 마켓에서의 달콤한 휴식부터 치앙마이 선데이 스트리트 마켓의 활기까지, 각각의 순간들이 하나의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한 달 살기라는 말에는 뭔가 결의(決意)가 느껴진다. 한 달을 떠나 살려면 모든 일상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한 달 살기를 다른 말로 하면 '한 달 멈춤'과도 같다.
이 질문의 실마리는 치앙마이 자체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치앙마이'라는 이름은 '새로운 도시'를 의미한다. 700년 전 멩라이 왕이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세운 이 도시에서, 지금도 사람들은 각자의 '새로움'을 찾고 있다. 붉은 벽돌에 새겨진 시간, 치앙마이 원님만 산책에서 마주한 문화와 감각이 교차하는 순간, 즉흥 연주가 만드는 치앙마이 밤의 마법에서 발견한 예술적 영감이 모두 하나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여행도 정착도 아닌 묘한 중간지대다. 제주도 면적의 고작 5분의 1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도시지만, 이곳의 외국인 거주자는 무려 3만 명이나 된다. 치앙마이 시민의 15%를 넘는 숫자다. 대여섯 중에 한 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이런 지표가 이곳의 삶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관광객처럼 서둘러 명소를 찍고 다닐 필요도 없고, 이민자처럼 완전한 적응을 강요받지도 않는다. 카메라가 사랑에 빠진 마을, 치앙마이 반캉왓 예술 마을에서의 예술적 발견, 치앙마이 캄 빌리지(Kalm Village) 오후 산책에서 느낀 평온함, 브라우니 한 입에 담긴 치앙마이의 비밀 같은 소소한 일상의 발견이 모두 이 절묘한 시간의 균형 위에서 가능했다.
무엇보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는 시간의 속도를 바꾸는 실험이다. 한국의 '분초사회(分秒社會)'에 익숙한 몸과 마음이 란나 왕국의 느린 시간에 적응해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치유였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이라는 표현이 핵심을 담고 있다. 초록 초록한 치앙마이의 바이브. 상상도 못 할 낮은 물가. 어딜 가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게다가 한국인을 좋아해 준다. 바가지 없고, 예쁜 카페와 힙한 술집들이라는 묘사는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삶의 질적 변화를 암시한다. 마음을 달래주는 맛있는 치앙마이 식당에서 경험한 미식의 여유, 치앙마이 올드시티엔 왜 사찰이 이토록 많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마주한 영적 깊이가 이를 증명한다.
그 여정의 깊이는 일상적 체험에서부터 영적 깨달음까지 다양한 층위로 펼쳐졌다. '꾸안꾸'의 정석, 치앙마이 찡짜이 마켓에서 보낸 시간에서 체험한 현지인의 삶, 시간을 엮는 치앙마이 라탄 거리에서의 명상적 산책, 클럽 좀 다녀봤다면 치앙마이에서 여긴 가야지 싶은 순간의 흥미, 붉은 성벽의 비밀, 치앙마이 올드시티의 탄생에서 느낀 역사적 깊이, 세 왕이 꿈꾼 치앙마이의 약속, 역사의 문을 두드리다에서 마주한 란나 문명의 지혜. 치앙마이 대학 양깨우 호수에서 랑머야시장까지의 풍경에서 발견한 낭만, 치앙마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주 특별한 갤러리 레스토랑에서의 예술적 조우. 모든 순간이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디지털 노마드가 지역 주민 1인의 약 2배를 소비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이들은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지역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거주자다. 인터넷과 IT 기기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들에게 치앙마이는 완벽한 베이스캠프가 된다. 치앙마이 여행, 왜 와인보다 맥주가 땡기나 같은 일상적 기호의 변화조차 이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징표다.
결국 치앙마이 한 달 살기의 진짜 이유는 '멈춤'에 있다. 와로롯 시장과 나이트 바자, 치앙마이 감각의 시장들에서 느낀 오감의 깨어남, 시간을 잃고 걷는 골목, 치앙마이 빈티지 감성 문화에서의 미적 체험, 프랑스 빵의 향기로 가득 찬 치앙마이 나나정글에서의 이국적 만남이 모두 '느림'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 신성한 존재와 따뜻한 터치, 치앙마이 코끼리 체험에서 느낀 생명에 대한 경외감, 미슐랭이 사랑한 치앙마이 거리의 로티, 그 맛의 비밀에서 발견한 단순함의 철학, 왓 우몽에서 도이 스텝까지, 치앙마이 여정의 완성에서 마주한 영적 깊이까지. 모든 경험이 삶의 본질적 속도를 일깨워주었다.
30편의 에피소드 끝에서 이제 확신한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곳에서 살아보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만의 속도를 찾기 위한 여정이며,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세 개의 쇼핑몰, 세 개의 얼굴, 하나의 치앙마이라는 복합적 정체성 속에서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의 복합적 정체성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한국에 돌아갔을 때를 따뜻하게 반겨줄 집과 가족, 비운 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마주해 줄 직장, 고작 한 달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통장잔고라는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 있기에 가능한 이 한달살이. 그리고 그 마주함 속에서, 비로소 삶의 진짜 속도를 찾아간다. 치앙마이는 그런 발견이 가능한, 몇 안 되는 특별한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