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나 Jul 03. 2023

상사 K를 상무님이 아닌 OOO씨로 부르기로 했다

송별회


2023.03.30


상사 K는 퇴사가 확정되고 팀 송별회를 제안했다. 참을 수 없는 팀장과 앞으로 팀을 이끌어갈 새로 들어온 후배들이 주축인 팀의 송별회라. 속절없게 눈물이라도 나버리면 어쩐지 주책맞을 것 같기도 했고, 참을 수 없는 팀장과 송별회란 이름으로 얼굴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기에, 정말이지 팀 송별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꼭 송별회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고, 송별회는 안 해주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송별회는 필요하다는 상사 K에게 제가 좋아하는 분들과 하는 건 어떨까요를 제안했지만, 상사 K는 나에 대한 배려보다 조직장으로써 아름답고 조화로워 보이는 그림에만 신경을 써서, 꼭 팀송별회여야 한다고 했다.


송별회가 직장생활 마지막 넘어야 할 산처럼 압박스럽다는 생각을 할 즈음에, 팀에 있는 왕언니 C가 상사 K를 설득했다. 떠나는 사람 입장에서 떠나는 사람이 기분 좋을 환송회를 해주면 어떻겠냐는 언니의 설득에 상사 K는 팀 송별회는 점심으로, 내가 원하는 멤버를 초대하는 송별회는 저녁으로 잡아 주셨다.


그리고 팀 점심 회식은 지난주 해초집에서 했다. 해초도 해초집 메인인 연어도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송별회 장소를 안내받을 때 굳이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었다. 물론 가서는 깨작거렸고 상사 K는 애(나)가 좋아하지도 않는 메뉴를 누가 선정했냐고 물었다. 참을 수 없는 팀장이 팀 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했다. 나는 초대받지 못한 팀 회의였고, 그 회의에서 나의 기호와 상관없이 선택된 식당에서 우리 팀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씁쓸한 송별회를 마쳤다.


그리고 좋아하는 멤버들만 은밀히 초대한 오늘 송별회에서 상사 K가 물었다. 회사를 나가면 어떻게 부를 거냐고. 아저씨로 부를 건 아니지 하면서;


순간 “에이, 이름은 아는데 아저씨는 예의 없죠. OOO씨라고 할게요”라고 했다. 그는 당황했지만, 이미 나는 송별회 자리에서 그를 OOO님이 아닌 OOO씨라고 불렀다. 바쁜 와중에 애써 먼 발걸음을 해준 동료들도 다 같이 상무님 대신 OOO씨라고 불렀다. 눈높이를 맞춰준 따뜻하고 너른 사람들과 함께한 이 송별회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눈물로 범벅이 된 송별회가 아니라 한껏 나답게 아수라장이었던 송별회. 너무 맘에 들었다.


퇴사를 앞두고 졸업하는 의미로 부서에 떡을 돌릴까 고민하다가, 나에게만 의미 있는 떡이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과한 의미부여 같아서, 오늘 자리에 오신 분들에게만 좋아하는 브랜드의 방향제를 선물했다. 언젠가 향기는 사라지겠지만, 그 향이 지속되는 동안은 나를 기억해 달라는 의미로!

그분들도 크리스찬 디올 종이백을 건넸다. 스카프였다. 상사 K는 보자마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고, 내가 생각해도 안 어울렸지만 내 돈으로 다시 살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명품 종이백이 뭐라고 디올이란 두 글자에 설레던지. 지올팍의 크리스찬 가사가 묘하게 머릿속을 맴돌며, 기분이 좋아졌다.


대리기사님과 함께 사라지기 직전, 상사 K는 나를 꼬옥 안아줬다.  


1. 아직도 입사 면접에서 본 상사 K를 기억한다. 장난기가 어려 있는 얼굴로 물어왔다.


상사 K: 단점이 뭐예요?
나: 할 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하는 편인데, 이게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상사 K: 에이. 그렇게 안 생겼는데...

기억이나 하려나. 그리고 호되게 당했다. 그렇게 안 생긴 애한테.


2. 첫 출근일에는 까만 정장이 아니라 꽃무늬 치마에 핑크색 카디건을 입고 출근을 했다. 캐나다 다녀와서 살이 10킬로 이상 붙은 상태라 맞는 옷이 없었다는 변을 해보았지만, 정장을 입고 출근하지 않아 나는 첫날부터 또라이가 되었고,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안줏거리가 되었다.   


3. 입사 후 며칠 뒤 팀장님(부사장님)이 소집하시는 팀 전체 회의에서 껌을 씹었다. 너무 졸려서 씹은 껌이 많이 자유분방했나 보다. 회의 후 며칠 뒤 과장언니에게 불려 가 껌 씹지 말라고 혼이 났다. 일 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느라 고역이었는데 껌도 못 씹는 회사가 못내 억울했는데, 상사 K가 시켜서 그 과장언니가 나를 소환한 거였다.


4. 할 일이 끝나면 자리에 굳이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퇴근시간이 되면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했고, 그럴 때면 상사 K는 등뒤에서 “부장님 아직 앉아 계시는데, 너 들어갈 거니?”라고 물었었다. 눈치껏 앉아서 야근하는 척을 바랐을 그지만, 늘 돌아서서 “제가 할 일은 끝나서요”라고 말하며 명랑하게 퇴근을 했다.


5. 해외 출장을 하루 앞두고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회의 자료를 만들고 있는 나에게 상사 K가 전화를 했다. “OO아, 생각해 봤는데…”라고 하려는 찰나에 자료를 만드느라 지쳐 있었기에 “생각 좀 그만하세요” 했는데, 그는 크게 상처받아 그 뒤로 두고두고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나중에 신랑이 “생각 좀 그만해”라고 이야기한 게 상처가 되어 상사 K에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 무례를 사과하기는 했다.


6. 어느 날 갑자기 너희들도 내 욕 할 때 이름만 부르냐고 물으며 내심 욕을 안 한다고 하길 바랐을 상사 K에게 “상스럽게 부르지는 않아요”라고 하는 우리에게 “욕은 하더라도 님은 붙여줘”라고 청을 했다.

 

오늘 상사 K는 스페인 와인을 꺼내면서 “너 하면 떠오르는 와인이야. 너는 스페인이야”라고 했다. 돌아보니 한없이 자유로웠던 나를 오롯이 품어준 상사 K에게 실은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컸다.


이런 오글거리는 감사를 상사 K에게 직접 전하기 뭐 해, 일기장에 속삭인다.

“많이 감사했습니다.”






퇴사 후 맞은 생일날, 크리스찬 디올을 목에 두르고 여의도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퇴근시간이라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증권맨들을 보며 나라는 인간의 무쓸모에 주눅이 들려던 찰나에 다행히도 목에 두른 스카프가 덜 백수스럽게 느껴졌다. 디올의 힘을 빌어서라도 목에 힘 좀 주라는 백수에게 과분했던 선물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통풍을 핑계로 송별회에서 돼지고기를 사준 상사 K가 최근에 소고기를 먹었다는 제보를 들어 문자를 보냈다.

“OOO씨, 요새 소고기를 드신다면서요”라고. 인사도 없고 그저 용건뿐이었던 그 문자를 받고 적잖이 당황했다고 전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입사하고 달력에 팀 사람들 생일을 표시할 때, 상사 K의 생일을 생신이라고 적은 걸 보고는, “OO아, 오빠야~ 생신은 너무하지 않니?”라고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그냥 오빠였어도 됐을 건데. 아니면 그냥 한 번 상사는 영원한 상사. 상무님이라고 부를게요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OOO씨가 얼마나 정 없이 그와 나의 관계를 싹둑 잘라버린 건지는 뒤늦게 깨달았다. 설마 했는데 내가 진짜 문자를 OOO씨로 보내왔으니 그도 상처가 됐으리라.


그리고 5월 중순. 친하게 지낸 언니 C도 퇴사를 했고, 그녀와의 친분 및 그녀의 송별회에 초대된 이들이 내 송별회에 초대된 이들과도 같았기에 눈치도 없이 그녀의 송별회에 참석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퇴사 후 두 달여 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볼 생각에 가기 전부터 설렜었다. 수다도 고팠고, 사람도 고팠었다. 퇴사 후 뭘 하고 지내는지 묻는다면 이 브런치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얼마나 솔직해야 하나 하는 희망회로를 그리며 간 그 자리에서 상사 K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희망은 부서졌고, 마음은 단단히 다쳤고 또 닫혔다.


자리에 오기 전에 있었던 술자리에서 술에 절여진 그가 나를 보자마자 뱉은 첫마디는 “아 신발. 네가 여기 왜 있어?”였다. 그리고는 내가 입은 녹색 티셔츠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너는 까만 옷이나 입으라고 시비를 걸었다. 아무리 언니 C와 친분이 있다 하더라도 이건 회사 송별회였는데 내가 왜 왔을까, 왜 왔을까를 자책하며 2차는 가지 말까 고민하다가 중간에 가버리면 언니 C가 미안해할 것 같아 끝내 자리를 지키며 2차를 갔는데, 2차는 더 가관이었다.  


너 때문에 글로벌 파견을 갈 사람이 끊겼다고 했다. 너 솔직히 퇴사 후회하지 물으면서. 애써 마음에도 없이 웃어 보이며 “그러게 있을 때 잘하시지, 아님 절친보다 저를 더 먼저 보내시지 그러셨어요”했다. 당황해하면서, 나를 또 떠 본다.

“너 솔직히 가족 말고 너 인정해 주는 사람 나밖에 없지 않냐? 너 어디 가서 이 정도 인정받을 수 있어?”


아직까지 퇴사를 후회한 적도 없었지만, 상사 K를 보면서 앞으로도 후회할 일은 없겠단 확신이 들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그의 입장에서 어쩌면 내가 퇴사를 후회하길 바랐을 수는 있지만, 어디 가서 인정도 못 받고 그렇게 내내 불행해하다가 그 자리에 나타난 거라고 믿고 싶었던 건지 까지는.

 

그는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도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언제는 성공하지 못해도 연락을 하라더니, 이제는 연락하지 말란다. 신발 소리를 하도 많이 들은 터라 나도 연락을 안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면 그가 이 글을 읽는 날, 내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 연락을 해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역시나 퇴사 전 마음먹었던 대로 그와 연을 끊는 게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마음으로 조용히 건넸다.


“잘 가요. OOO씨”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직업은 퇴사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