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입은 상처도 심각하다
칼과 주먹이 되는 말, 언어폭력
우리는 말의 무거움에 대해서 너무 쉽게 간과한다.
말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몸으로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보다 가볍게 여겨진다.
그러나 말 또한 물리적인 칼이나 주먹처럼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상처를 준다.
그것이 몸에 난 상처처럼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말이 칼이나 주먹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언어폭력은 당하는 사람에게 칼이나 주먹, 혹은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언어폭력으로 오랫동안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하고 언어폭력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아침에 우연히 배달앱 새우튀김 환불건으로 쓰러져 사망한 분식집 업주의 기사를 읽었다. 이 진상 손님이 가게를 직접 찾아가서 깽판을 친 게 아니다. 그 또한 '말'이라는 폭력으로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전보다 언어폭력에 의한 피해사례를 더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만큼 언어폭력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다행스럽다. 한편으로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취약한 현대인이 과거에는 폭력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언어폭력에 더 많이 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언어폭력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언어폭력은 대등한 관계에서 일어나기보다는 우월한 지위나 연장자로부터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대응할 수도 없이 무방비에서 마구 가격 당하는 일이 많고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가슴이 심하게 뛰고 부들부들 떨리고 며칠간은 그 일과 말들이 생각나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내가 처음으로 이렇게 가슴이 뛰고 손발이 떨렸던 경험은 초등학교 때였다.
내 짝은 남자아이였는데 욕을 하면 정말 대차게 하는 아이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견디다 못해 선생님께 짝을 바꿔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때 선생님의 답변이 지금도 생생하다.
'같이 살기 싫어졌으니 이제 헤어지겠다는 거지?'
가장 최근 '이건 정말 사람을 병들게 하는 언어폭력이다'라고 느꼈던 것은 직장에서이다.
전 팀장은 꼼꼼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팀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팀원들에게 막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특기는 (1) 막무가내 우기기 (2) 비아냥 (3) 집요함이었다. 그의 타깃은 주로 어린 남자 사원이었다. 나와 함께 일하던 4년 차 팀원이 그의 주요 희생양이었다. 언어폭력은 그걸 당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듣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누구든 팀장에게 걸려 한바탕 푸닥거리를 할 때 모든 팀원들은 심장이 쫄아들고 가슴이 쿵쿵 뛰는 불행한 경험을 했다.
손지검을 해야 꼭 폭력이 아니다. 사람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언어폭력에 대한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1. 언어폭력의 경우 당사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아프다.
- 신체적인 위해는 당하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가해지는 폭력이다.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신체적인 고통이나 아픔을 함께 느끼지는 못한다. 즉 목격자가 몸의 상처를 함께 입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폭력의 경우는 다르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언어폭력은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상황에 노출된 모든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다. 작년에 나의 팀장이 내가 아닌 다른 팀원들에게 자리에서 면박을 주고 말로서 갑질을 할 때 내 손도 덜덜 떨리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언어폭력은 그 말을 듣고 있는 모두를 간접 피해자로 만든다.
2. 가해자 처벌이 어렵다.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은 직접적으로 보이는 흔적을 남긴다. 피가 난다든지, 어디가 찢어진다든지, '전치 00주의 상해'라는 의학적 진단이 가능한 상처가 육안으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 사실이 입증된다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가 있다.
반면, 언어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피해 사실 정도를 어떤 기준으로 측정할 수가 없다.
이 시점이 언어폭력의 가해자를 특정하여 처벌하기 애매한 결정적인 부분일 것이다.
얼마나 어떤 언어폭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면 사람의 마음이 다치는지, 혹은 정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되는지 그 기준도 없고 측정할 수도 없다.
언어폭력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피해자의 마음과 정신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사람의 내면을 파괴한다. 사실 죄질로 따지자면 신체적 상해보다 더 나쁘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의 마음에 남겨진 상처는 연고나 반창고 등을 붙여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3. 누구나 쉽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사람을 실제로 때린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평생 살면서 뺨 한번 안 맞아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폭력 사건에 휘말리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누군가를 때려서 상처를 낸다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반면, 언어폭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날 수 있다. 그만큼 가해하기가 쉬운 것이다. 또한 물리적인 에너지가 필요하지도 않고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다. 나에게 달린 신체 기관인 입을 이용하여 손쉽게 할 수 있는 쉬운 폭력이다. 조직 폭력배나 폭력 전과자들만 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에 너무 멀쩡한 일반인 모두가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
4. 사람마다 피해의 정도가 다르다.
소름 끼치는 생각이지만 복사를 하다 A4 용지 모서리에 손가락을 베였다고 해보자. 손을 씻을 때마다 따끔따끔 아프다. 종이에 베어서 아픈 것은 사람의 피부조직이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보통 비슷한 아픔을 느낀다. 즉 사람의 신체 구조는 비슷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폭력이 가해지면 사람마다 비슷한 아픔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정신적인 상처는 사람마다 참 다르다.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말에도 큰 고통을 느껴 괴로워하는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도 있고, 소위 '맷집이 강하다'라고 표현하는 좀 무딘 사람도 있어서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크게 개이치 않고 본인의 내면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심리적인 상태에 따라서 말이 다가오는 충격이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내면이 멍드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고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같은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충격의 정도가 다르다.
5.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잘 모른다.
언어폭력의 특징이다.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주먹질을 하고 멍들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선의의 질책', '사랑의 매', '할 수 있는 정도의 꾸지람'이라는 명분 하에 일어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말 습관 자체가 더럽게 들어서 자기가 뱉어내는 말들이 남들에게 어떤 비수로 꽂히는지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교감 장애인도 많다. 이런 사람은 주로 이기적이고 본인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말에 대해서 자각할 수 있기만 해도 폭력적인 언사가 많이 줄어들 텐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인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6.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이 다르다.
이게 또 희안하다. 실제 내가 누군가를 때린 기억은 너무 선명하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말로서 상처를 준 건, 오래도록 상처 받은 사람만 기억한다.
너무나 무심코 쉽게 말하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10년전쯤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녀가 10년전쯤 내가 했던 한 마디에 대해서 말을 했다.
'그때 과장님이 이렇게 말해서 제가 몹시 슬펐거든요.'
몹시 당황스러웠고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던가 되집어 생각해보려 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말은 발화자를 떠나는 순간 공중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그 흩어진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고스란히 쌓인다. 그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마찬가지 이다.
당신의 말은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마음에 쌓인다.
좋은 말은 상처가 되지 않았음으로 행복한 기억으로 쌓이고 몸 안에 스며드는 반면, 나쁜 말은 상처로 흉터가 남았기 때문에 계속 잊혀지지 않고 기억이 나는 것이다.
1. 영구적인 흉터를 남길 수 있다.
몸이 다치나 마음이 다치나 마찬가지로 다친 이후에 어떤 회복과정을 거치든 간에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병으로부터의 완쾌는 있을 수 있지만 폭력으로부터의 완쾌란 없다. 영구적인 흉터는 몸에 남기도하고 혹은 마음 안에 자리잡기도 한다.
2. 심하면 크게 다치거나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 정도를 넘어서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것은 정신에 가해지는 언어폭력도 마찬가지이다. 정도가 심해져서 피해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신체적 폭력과 정신에 가해지는 언어폭력, 둘 다 어떤 것이 더 중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함의 경중은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체적 폭력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정신에 가해지는 언어폭력은 너무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3. 신체와 정신 둘다에 영향을 준다.
사람의 신체와 정신은 하나이다. 둘을 각각 분리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즉 몸이 아프면 마음도 덩달아 아파지고, 마음이 아프면 몸의 활력을 잃는다.
신체가 겪은 일은 사람의 내면에도 깊은 영향을 준다. 칼에 찔린 상처가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남아서 평생 칼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또 칼에 찔리던 상황이 계속 생각나며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언어폭력에 계속 시달리는 사람은 자존감을 잃게 되어 몸의 병을 얻기도 한다. 신체의 활력이 떨어져서 계속 누워만 있게 되기도 하고 극도의 스트레스가 암이나 대상포진과 같은 신체적인 형태로 발현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피해가 없다고 해서 신체 폭력에 비해서 가볍게 인식되는 언어폭력을 멈추게 하고 단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 언어폭력을 쉽게 사용하는 사람을 겪으면서 '어떻게 하면 그의 이 폭력을 멈추게 만들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다.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자기의 행동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참 그게 어렵다.
'지금 말씀하시는 거, 그거 '언어폭력'이에요.'라고 말을 한다고 치자. 아마 그 사람은 깜짝 놀랄 것이다.
'나름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건데, '폭력'이라뇨!!'라고 발끈하면서 말할 것이다.
말을 할 때 한 가지만 할 수 있더라도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하기를 줄일 수 있다.
바로 상대방의 리액션을 확인하는 것이다.
'OOO 인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훅 마음의 비수를 찔러 넣기 전에 상대방이 생각할 시간적, 심적 여유를 줘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짐작하게 하고 나서 따끔한 말을 하면, 이것은 칼이나 주먹이 아니라 한의원의 침이나 주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속절없이 투하하는 말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 될 수 있다. 아무리 화가 나고 꼭 해야 될 말일지라도
심호흡을 한번 하고 폭탄처럼 쏟아내지는 말자.
언젠가 나도 다른 이에 의해서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상대에게 말이라는 칼과 주먹을 휘두를 것이다.
이런 사람을 단죄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일단은 '말로서 상대에게 주먹질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 큰 상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고 우리 선조들은 얘기했다.
말은 너무 쉽지만 참 아름답게도 사용할 수 있고, 참 추하게도 사용할 수 있다.
나의 말 한마디로 '상해죄'에 해당하는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늘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