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는다'는 것이 가치
경청은 '기울일 경', '들을 청'이라는 두 개의 한자어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마음을) 기울여 듣는다'라는 것이다.
기울인다는 의미는 방향과 행동을 의미한다.
그저 꼿꼿하게 마음을 세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말하는 사람에게로 비스듬히 무게중심이 이동해 있다는 뜻이다.
대화를 할 때 '무게 중심이 이동해 있다는 것'. 이것은 나보다 상대방에게 비중이 쏠려있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상대에게 내 몸과 마음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킬 때 비로소 진짜로 '들을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경청은 대화의 기본이면서 대화의 완성이다.
특히 심적으로 힘든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말할 때 들어주는 것만큼 대단한 위로가 되는 일이 없다.
당신은 그저 무게 중심을 이동하여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만 주면 된다.
이 사소하게 보이는 당신의 배려가 상대방의 마음에 난 상처 위에 연고를 발라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잘 들어주기만 해도 당신은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다.
경청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이것이 쉽고 누구나 잘할 수 있다면 '경청'하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제대로 잘 듣기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무게 중심이 본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나'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자코 듣고만 있는 그 시간을 참아내기가 참 힘들다.
내가 말할 수 없다면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대화는 서로에게 시간 낭비일 뿐 그 어떠한 것도 개선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청하는 것은 정말 수동적인 것일까?
상대방의 대화를 오랫동안 듣고 이해하기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주로 얘기를 들은 다음 진단을 내리는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사와 같이 전문적인 직업도 있는 것처럼. 듣는 것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적극적인 활동이다.
경청하는 것은 평소 습관이다. 듣는 연습이 안되어 있으면 잘 들을 수가 없다.
그리고 경청은 수련이다.
대화는 탁구처럼 주고받으면서 일어나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보면 서로 상대방에게 계속 공을 던질 뿐, 상대방이 던져주는 공을 받아주지는 않는 상황을 목격할 때가 자주 있다. 즉 서로 자기의 얘기를 하느라 상대방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상대방의 얘기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왜냐하면 듣는 중간에도 자꾸만 무게 중심이 나에게로 돌아오며 듣기보다는 말하기가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게 중심은 관성의 법칙처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상대방에게로 기울어져 있던 무게 중심은 쉽게 나에게로 돌아온다. 얘기를 듣는 동안은 상대방에게 내 무게 중심이 가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은 수련이다. 경청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수련할 수 있다.
내가 말을 할 때 상대방에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는 나의 눈을 집중해서 바라볼 것이고 내 대화에 가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짧게 리액션을 해줄 수도 있다.
누군가 나의 말을 열심히 들어줄 때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는가?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경청은 존중의 표현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표시이다.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회피하거나 흘려들을 때 무시당하고 외면당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런 감정은 곧 마음의 상처로 남게 된다.
내가 존중을 주면 존중에 상응하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온다.
내가 무시를 날리면 무시에 상응하는 부정적인 상처가 부메랑이 되어 꽂힌다.
대화의 질은 정직하다.
듣기는 학습이다.
우리는 20년 가까이 초, 중, 고, 대학을 거치며 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주요 활동은 듣기이다.
듣고 보아야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듣는 것보다 더 주요한 학습의 활동이기는 하지만 듣는 것이 제대로 될 때야말로 학습이 완성된다. 누군가 정리해둔 학습 공책만 보면 잘 이해가 안 되었던 것도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때 훨씬 이해가 잘 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을 배울 수 있다.
상대방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상대방이 알고 있는 사실과 지식, 나와 다른 견해 등 그 사람을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듣고 있는 게 지루하고 힘들 때, '그래도 뭔가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듣자.
경청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하면 나의 적극적인 듣기는 상대방의 대화의 질 또한 높여준다.
탁구공처럼 테이블 위에서 대화가 왔다 갔다 할 때 선순환이 일어난다.
상대방은 나에게 제대로 공을 배달하기 위해서 그 역시 좀 더 집중한 발화를 할 것이다.
이렇게 내가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말하는 사람을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경청, 이 얼마나 멋있고 가치 있는 대화의 기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