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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Jul 20. 2021

'괜찮냐'는 말이 간절히 필요했어.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을혼자 두지마세요.

3년 전 처음으로 팀장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연극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배우인 것만 같았다.

객석에서 본다면 무대 위 주변의 모든 것이 fade-out 되고 내 책상 위에만 조명이 비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있는 내가 너무 잘 보이는 그런 상태에 내가 놓여진 것 같았다.


세상 부끄러웠고 정말 누가 자꾸만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만 같았고 나를 비난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나의 착각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회사를 갑자기 그만둔 대표가 발탁 인사로 팀장을 시킨 나를 많은 동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의 미움을 한 몸에 받을 만큼 그렇게까지 모질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사십이나 먹어서도 이렇게 집단적으로 미움을 받는 일이 있구나, 싶어서 그때는 참 힘들었다.

그 일은 사실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상처이다.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감정.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기분...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럽고 또 서럽다.


면팀장이 되는 발령이 뜬 이후 회사의 많은 사람들은 고소해했을 것이다.

그땐 왜 그렇게 서로를 미워했을까. 너무 한쪽 사업만 집중적으로 육성하려 했던 전 대표의 경영 방식이 회사를 둘로 쪼갰다.  주목을 받는 부서의 사람들은 자부심과 긍지로 너무나 열심히 일했고,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부서의 사람들은 불만을 쌓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열심히 할 일도, 그렇게 미워할 일도 아니었다. 결국 그냥 회사 일이었는데 말이다.


하여튼 발령 이후 나는 철저히 혼자 남겨졌다.


인정한다. 위로를 받지 못했던 것의 원인은 나로 인한 것이라는 걸.

내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간에 사람들로부터 심적인 지지기반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은 나의 문제였다.

내가 그들에게 딱히 나쁜 감정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일하면서 그들과 사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지 않았다. 정치질 하며 몰려다니는 남자들이 일단 너무 싫었는데, 역시 정치질 하며 몰려다니는 남자들의 힘은 강력하다. 그들은 '평판'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고 소문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조직 안에서는 그저 힘없는 여자애 하나 정도는 뒷방으로 몰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전 직장에서는 몰랐던 남자들의 무서움과 간사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하는 조직사회에서 만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혼자 남겨졌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때 꼿꼿한 자세를 풀었다면 이후 직장 생활이 조금은 편해졌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웃사이더의 기질에 걸맞게 나 스스로 회사 사람들을 왕따 시켰다.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지 몰라서 말을 못 걸었어요. 


조직 개편 이후 혼돈의 시간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이전에 친하던 동료와 가볍게 얘기할 일이 있었다.

어떤 얘기 끝에 그녀는 

'그때 많이 힘드셨죠? 너무 엄청난 일이고, 너무 안되기도 하셔서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몰라서 말을 못 걸었어요. 혹시나 그 얘기하는 걸 불편해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요..'


그때 알았다. 회사 안에 있는 모두의 속마음이 나의 낙하를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했던 그들도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혹시나 싫어하면 어쩌나,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오지랖일까? 힘든 일 겪었으니까 혼자 두는 게 좋겠지?'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에게 위로의 표현을 하는 것을 많이 어려워한다는 걸 알았다.

차라리 모른 척해주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도 한다.

모른 척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승진이나 좋은 직장으로의 이직 등 경사가 있는 사람에게는 찾아가서 축하해주었다.

기쁜 일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진짜 회사에서 입지가 좁아지거나 퇴사 압박을 받아 처지가 어려워진 선배님들께는 선뜻 찾아가기가 꺼려졌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선배님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척하면 불쾌해하지 않을까, 지금도 기분이 완전 다운인데 불난 집에 기름 붓는 일은 아닐까. 다시 그 일을 상기시키게 하면 마음이 안 좋을 거야'

이런 안 해도 되는 지나친 배려가 행동하고자 하는 나의 발목을 잡았다.


무대 위 홀로 남겨진 사람을 보았을 때 아는 척을 해주자


내가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상황을 겪어보니 알 것만 같았다.

부끄러운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을 혼자 두는 것보다는 말이라도 걸어주는 게 좋다. 함께 차라도 한잔 마셔주는 게 좋다. 괜찮으냐고 물어봐주고, 괜찮다고 위로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게 훨씬 좋다.


나 또한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것에 서툴렀기 때문에 어려운 일을 겪을 사람을 위로하고 함께 해주는 것이 축하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이제는 안다.

축하는 내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로는 생각보다 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을 배려해주고 쉽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설익은 충고만큼이나 섣부른 위로가 독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만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겪어보니 혼자 두는 것보다 조금 서투르지만 '괜찮냐'라고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 주는 것이 훨씬 큰 위로가 된다.


우리는 진심으로 위안을 건네는 것에 참 익숙하지 않다.

그렇지만 당신이 한 10초 시간을 내어서 건네는 그 위로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제 조직 개편으로 이동이 생긴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반드시 표현한다.

수고했다는 말을 할 때도 있고, 괜찮냐고 물어볼 때도 있다.

그들이 고맙게 느끼던 아니던 상관없이 나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내가 받고 싶었던 관심과 위로를 타인에게 전해주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작은 위로가 큰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처럼 무대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서러운 기분을 덜 느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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