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펜슬 스커트 Aug 13. 2021

'맛있다'는 표현의 고마움

맛없어도 맛있다고 꼭 해주세요.

먹는 문제로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집안일에 서툴다.

집안일 머리가 나쁜 편이라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융통성이 없다.

게다가 손이 느려서 한 가지 집안일을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이건 태생적으로 타고나기를 집안일 관련해서 좀 열등한 부분도 있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개선이 안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일상을 꾸려나가다 보니 아주 느리게 조금씩 개선은 되고 있다. 이렇게 집안일에 slow learner인 나의 빈틈을 훨씬 많이 채워주는 것은 남편이다. 사실 남편이 집안일의 주체이고 내가 그의 빈틈을 채운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다른 것보다 특히 요리에 관해서는 신혼초부터 그가 언제나 주도권을 잡아왔고 지금까지도 나보다 한수 위이다. 매일매일의 평범한 밥상에 딱히 요리라고 이름 붙일 거창한 음식이 항상 올라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때그때 바로 조리한 음식으로 한 끼의 밥상을 차려내는 시어머니의 밥을 먹고 자란 남편답게 늘 밥상에는 방금 만든 요리가 올라온다. 


식사에 관해서는 그는 주로 차리는 입장이고 나는 주로 먹는 입장이다. 신혼 때 남편과 식사 때문에 싸운 적이 있다. 좀처럼 크게 말이 없고 관대한 성격의 남편이었는데 아마도 많이 쌓여서 그랬던 것 같다.


'왜 차려주면 아무 말도 안 하고 먹는 건데?'

'무슨 말을 해야 되는 건데?'

'맛있다든지, 잘했다든지. 그런 얘기를 해줘야지!'


남편이 화가 났던 것은 내가 밥을 먹으면서 그가 준비한 음식에 대한 리액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입이 워낙 짧은 사람이고 미각이 둔한 편이라 라면은 라면 맛, 김치찌개는 김치찌개 맛, 계란말이는 계란말이 맛이지 더 맛있는 라면, 줄 서서 먹는 김치찌개, 잠자리에서 생각나는 계란말이가 따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밥을 차려주면 차려주는 대로 잘 먹었을 뿐이었는데, 차려주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못해본 것이다. 연애 시절에도 별로 다툼이 없었던 우리가 식사할 때 맛있다고 표현하지 않은 걸로 싸우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내가 해주는 간이 안 맞는 밍밍한 된장찌개도 내가 '좀 맛이 이상하지 않아?'라고 물으면 '아니, 괜찮은데?'라고 대답해주었던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요리하는 사람에 대한 수고를. 


그 이후에 나는 항상 그가 해주는 음식에 대해서는 '맛있다~'라고 말을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잘 먹었다는 인사를 꼭 한다. 실제 맛있다고 말을 하고 먹는 식사는 왠지 더 맛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맛있게 잘 먹어주는 감사함


아들은 다행히 나를 닮지 않아서 차라리 살찌는 게 좀 걱정될 정도로 무엇이든 잘 먹는 편이다. 대부분 아주 특수한 경우 - 정말 망한 요리라든가..-를 제외하고는 항상 '맛있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아이가 요리해주는 사람을 배려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텐데도 '맛있다'는 말을 해줄 때 엄마로서 정말 뿌듯하고 보람된 기분이 든다.


'진진이는 잘 먹어서 좋아요.'

진진이가 놀러 갔던 집 친구 엄마가 얘기했다.

아이는 그날 돌아와서 '엄마, 욱이 엄마가 짜장면 해주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었어.'라고 말했다. 


어디서 이렇게 기특한 것을 타고났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표현은 참 사랑받기 딱 좋은 것 같다. 

이 아이는 정말 맛있어서 그렇다고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표현해주는 것 자체로, 또 맛있게 먹어주는 행동으로 밥상을 준비한 사람의 수고로움이 인정받고 보람으로 돌아온다. 



긍정적인 표현은 더 자주 하기


나는 주로 '안 주고 안 받기' 주의였다.

누가 뭘 해주는 것도 부담스럽고 누군가를 챙겨주는 것은 신경 쓸 것이 많아서 더욱더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냥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내 마음이 편하려고, 마음의 짐을 지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안 주고 안 받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알 길이 없고 나도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감사하면 감사하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밥상이든 선물이든 호의든 내가 받은 것들은 다 선물이고 은혜이다. 이런 선물과 은혜를 받을 때는 반드시 표현을 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쑥스럽다고, 그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라고 생각하며 표현하는 것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은 제대로 잘해줄수록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하면 부담스러워 말고 마음으로 최대한 감사하고 표현하면 된다.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서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일이고 대단히 감사할 일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아이에게 그가 생활하면서 보이는 작은 배려, 긍정적인 작은 행동들을 최대한 칭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더더욱 '긍정적인 작은 발견'이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전 02화 '괜찮냐'는 말이 간절히 필요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