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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쌤 Aug 01. 2024

나롱이 시한부 선고를 받다.

힘든 일은 한 번에 온다 했던가.

그날이 마지막일 줄 알았던 나롱이는 하루하루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억지로 급여한 맛없는 식사가 나롱이에게는 더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의지를 불타오르게 했는지, 매일 오는 누나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건지, 아니면 그 이외의 것 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롱이는 조금씩 기운을 차렸고, 호전되었다.




"나롱이는 현재 '심장병 D단계'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심장병은 A/B1/B2/C/D단계가 있는데, 나롱이는 'D단계'라고 했다.


A단계 - 예방적인 단계.

B1단계 - 경미한 증상이 있으나 거의 무증상 환자. 청진 시 심장을 확인하는 정도.

B2단계 - 정밀 검사가 필요한 단계. 모양 변화가 생기고 심장약 복용을 권고하는 단계.

C단계 - 심장 기능이 저하되어, 기침, 호흡곤란, 폐수종이 발생하는 단계.

D단계 - 매우 심각한 상태로 말기 심부전 단계.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다짜고짜 'D단계'라는 나롱이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비슷한 케이스를 봤을 때, 앞으로 3개월 정도 예상됩니다. 물론, 아이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보다 기간이 짧아질지, 더 길어질지는 사실상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마냥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행히 나롱이가 약물에 반응이 있어 호전되고 있고, 약을 거부하거나 싫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기운도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퇴원을 해서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어서 더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무래도 노견이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호흡이 안정되면, 집으로 돌아가 보호자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어린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 덕분에 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고, 나롱이를 집에서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 궁금한 것들을 남편과 번갈아가며 여쭤보았다.


귀찮을 수도 있는 소소한 질문들까지 선생님은 진심을 담아 답변해 주셨고, 그런 선생님 덕분에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는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당장 퇴원은 불가했기에 여전히 매일매일 나롱이를 보러 왔고, '1시간 면회'를 할 수 있는 날도 찾아왔다.


면회실에서 나롱이를 처음 봤을 때, 지금까지 버텨준 나롱이에게 너무 고마웠고, 하늘에 감사했다.


하지만, 나롱이는 여전히 나와 눈을 맞추는 걸 어려워했다. 아직도 '나는 살 생각이 없다'라고 하는 것처럼.


마음은 무너졌지만, 내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롱이도 인정해 버릴 것 같아 희망의 말을 쏟아내었다.


"나롱아~ 얼른 집에 가서 나롱이 좋아하는 간식 먹자~"

"퇴원하면, 나롱이가 좋아하는 한강도 가고, 누나랑 놀러 다니자~"

"그동안 못 했던 것들 다 해보자~"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 약속들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그렇게 나롱이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처음 병원을 온 이후, 일주일이란 시간은 금방 흘렀고, '추석'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떡집을 운영하셨기에 명절 전 날은 하루 종일 떡을 팔아야 했고, 명절 당일에는 시댁에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떡을 파는 당일날 아침, 내가 그만 평균 남성 키보다 높은 계단에서 굴러떠러 지고 말았다.


그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떡 기계가 있는 지하로 굴러 떨어지면서, 하나만 생각했다.


'절대 다치면 안 된다'


가슴으로 떨어졌으면 떡 기계에 갈비뼈라도 부러졌을 상황이었지만, 그 상황에 재빠르게 몸을 돌려 엉덩이로 착지를 한 나란 사람.


많이 아프긴 했지만, 그날 부모님을 도와야 했기에 밤까지 진통제로 버텼다.

(남편과 새언니가 나 대신 더 많은 일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도 '응급실'을 갔다.




힘든 일은 한 번에 오고, 버틸 수 있을 정도만 고통을 주신다고 하던데..


2023년 9월 마지막 3주는 '교통사고', '나롱이의 시한부선고', '계단 사고'라는 일이 순서대로 찾아와 저의 몸과 정신까지 흔들어놓았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고, 인생은 오르락내리락 그래프를 그리며 살아간다기에 희망을 품고 버텼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롱이가 나를 기다리니까, 내가 힘내야 나롱이를 보살필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버틴 것 같습니다.


아픈 반려견을 돌보시는 모든 보호자님들이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힘내세요'라는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억지로 힘을 내라고 할 수는 없기에..

대신, 저에게 위로가 되었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당신이 보호자라서 행복할 겁니다."


(입원한 나롱이가 잘 버텨주길 바라며 그렸던, 나롱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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