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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쌤 Aug 04. 2024

2023년 10월 3일

나롱이 생일이 생겼다.

 나는 나롱이 생일을 한 번도 챙겨준 적이 없다.


사실 몰랐다.


엄마 지인 분을 통해 키우게 된 강아지였기 때문에 그때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고만 알았지, 정확한 탄생일은 몰랐다. 사실 궁금한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런데 반려인들이 많아지고, 반려문화가 생기면서 강아지 생일을 챙겨주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고, 나롱이에게 내심 미안했다. 나롱이는 생일이란 걸 알지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날이나 생일이라고 할 수는 없기에 그렇게 나롱이는 생일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2023년 10월 3일.


나롱이가 일주일 넘게 입원 후, 퇴원하는 날이었다.


다 나아서, 건강해져서 퇴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곁에서 남은 생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즐겁게 살다 가길 바라는 마음에 선생님과의 상의 끝에 통원 치료를 받기로 하고 퇴원을 했다.


"약은 하루에 3번 주셔야 하고, 최소 몇 시간 간격이어야 합니다. 호흡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편하게 자고 있을 때 호흡수를 항상 체크해 주시고, 기록해 주세요. 그리고, 잇몸이 파래지는 청색증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많은 주의사항들이 나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다 기억하기 어려웠던 우리 부부는 의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주의 사항들을 녹음하였고, 집에 와서 익숙해질 때까지 여러 번 들으며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나롱이의 호흡수 기록 


.

.

(중간 생략)

.

.

나롱이 약과 식사에 대한 기록




지금 다시 하라 그러면 엄두가 안 날 정도로 그때 나롱이에게 내 모든 정신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나롱이는 이제 친정 부모님 집이 아닌 '우리 집'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최대한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키려 노력했기에 내 모든 스케줄은 오로지 나롱이에게 맞춰졌고, 그렇게 나롱이는 점점 활력을 찾아갔다.


그 활력만큼 약에 대한 거부반응과 강제 급여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약은 매번 정량을 먹이지도 못했고, 식사는 오른쪽 잇몸 사이로 넣어주면 왼쪽으로 뱉어내고, 질질 흘리며 '나는 절대 안 먹겠다'라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어떤 날은 모든 걸 거부하는 나롱이한테 너무 지쳐서 들고 있던 주사기와 함께 "너 혼자 알아서 살아!!"라는 말을 던지고, 혼자 공원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다.


공원을 걸으며 속상한 마음을 혼자 삭혔다.


친구에게 연락을 하려니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엄마에게 연락을 하려니 걱정만 시킬 것 같아 쉽사리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혼자 벤치에 앉아 펑펑 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 집에 들어가니, '나 두고 어디 갔다 왔어'라는 눈빛의 나롱이가 아직은 기운이 없는 꼬리를 나름대로 열심히 흔들며 반겨줬다.


누나가 "너 혼자 알아서 살아!!"라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또 누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나롱이를 보자니 너무 미안해 또 울었다.


어리둥절한 나롱이를 꼭 안아주며 "누나가 미안해. 누나가 나롱이 꼭 지켜줄게. 너 혼자 알아서 살라고 한 말 취소야. 누나랑 같이 행복하게 살자.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렇게 매일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며 우린 더 끈끈해졌다.


그리고, 점점 회복하는 나롱이를 보며 희망이 생긴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앞으로 나롱이 생일은 10월 3일이야. 우리 내년에 꼭 생일파티 하자.


에필로그.


나롱이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 '제발 조금이라도 함께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음료수에 손 편지를 하나하나 붙여 병원 선생님들과 관계자분들께 나눠드린 적이 있습니다.


총각 시절, 오랫동안 키운 반려견을 병원에서 하루 만에 떠나보낸 남편의 의견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좀 '오버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사람과 강아지를 무서워하고 사회성이 없는 나롱이가 낯선 병원에서 오랜 시간 있어야 했기에,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이 한 번이라도 "나롱아~"하고 이름이라도 불러주면 혹시나 '삶의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우리 나롱이 조금이라도 더 봐달라는 뇌물이자,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마음까지 담은 선물.


커피를 한 분 한 분께 드리면서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져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모든 분들이 제 마음을 유난스럽지 않게 받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남편의 성의와 저의 간절함, 선생님들의 정성이 모여 그렇게 나롱이에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롱이가 이겨낼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주신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빌어 꼭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나롱이가 생일을 갖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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