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을 위한 여정.
나롱이가 입원을 한 후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매일매일 나롱이한테 가줘, 나롱이가 버림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우리 꼬맹이가 병원에서 나를 보던 마지막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그런 눈빛이 되지 않게 나롱이 보러 가.."
(꼬맹이는 남편이 총각 시절 키우던 반려견이다.)
사실 김포에서 반포까지 매일 가는 건 평소 게으른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출근하기 전 매일 1시간이 넘는 교통체증을 뚫고 달려갔다.
남편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내 게으른 몸뚱이를 움직였다.
나롱이와 허락된 면회시간은 단 10분, 호흡이 괜찮아지면 면회실에서 1시간 면회가 가능하지만, 아직은 산소방에 있어야 해서 중환자실 10분 면회가 전부였다.
나롱이는 아직 기운이 없었고, 물은 먹지만 음식은 전혀 먹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음식을 심하게 거부하는 데에 이상을 느껴 나롱이 담당선생님께서 피검사를 진행했는데, 췌장염수치가 어마어마했다.
강아지가 제일 고통스러워하는 통증이 '췌장염'이라고 언뜻 들었던 것 같은데..
나롱이는 그 어마어마한 고통을 '음식 거부'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살이 빠지는 건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기에 "강제급여"가 시작되었다.
입원하는 동안에는 '콧줄'을 끼워 하루에 3번 강제급여를 했다. 살아야 하니까.
근데 살아야 한다는 게 '나롱이도 원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콧줄을 끼게 되면 불편하다. 계속 기침을 해서 빼내려고 하고, 결국 빠진 콧줄을 다시 끼우려면 거부할수록 코피도 나고, 상처가 생긴다.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콧줄까지 끼워서 내 욕심에 생명을 연장하려는 거라면?
별로였다.
사실 그때 즈음 의사 선생님에게 '안락사'를 여쭤보기도 했다.
"나롱이가 삶의 의지가 없는데 제가 억지로 붙잡아 두면서 더 고통스럽게 하는 거라면, 보내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
그때 선생님은 나에게 "나롱이가 안락사 대상에 해당되는 건 맞습니다. 다만, 현재 나롱이가 약물에 호전되는 반응을 보이니, 조금만 더 지켜보시죠."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믿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나롱이를 보러 가는 일뿐이었다.
며칠 후, 저녁 8시가 좀 넘은 시간, 수업 중에 나롱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심장이 쿵.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나롱이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통화 가능하신가요?"
"네.. 무슨 일이시죠?"
"나롱이가 많이 위독합니다. 호흡이 괜찮아졌었는데, 흉수가 계속 차는 상황이다 보니 호흡이 많이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지고요. 아무래도 노견인지라.. 오늘을 넘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보러 오셨으면 하는데, 지금 오실 수 있으신가요?"
"어.. 어.. 제가 아무리 일찍 끝나도 밤 10시에 출발이 가능해서요, 괜찮을까요? 그 시간은 면회가 안 되지 않나요..?"
오늘도 어김없이 '일' 때문에 선뜻 '가겠습니다.'라고 답변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따뜻한 말투로 "제가 늦게 퇴근하면 됩니다. 걱정 마시고 보러 오세요. 출발할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남은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정신없이 마무리하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바로 마주하게 된 중환자실의 나롱이.
의사 선생님은 "보호자님이 괜찮으시면, 잠시만이라도 산소방을 오픈해서 보셔도 됩니다. 다만, 호흡이 갑자기 빨라지면 바로 면회는 종료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바로 열어달라고 했다.
그 작은 유리문을 열자마자 나는 오열을 하고야 말았다.
그동안 유리문 틈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를 외면했던 나롱이가 드디어 나를 인지한 건지, 힘없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찾아 코를 킁킁거리며 움직이는 그 모습에..
"나롱아!!!!!!!!! 나롱아...... 나롱아.. 누나야... 누나 왔어!!!"
병원은 나의 울음소리로 인해 순간 정적이 흘렀고, 선생님들마저 숙연해졌다.
그렇게 울음바다가 되어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10분은 끝이 났다.
(불편한 콧줄 때문인지, 기운이 없어서인지, 누나를 밀어내는 듯했던 나롱이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