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롱아 나롱아 나롱아...
2023년 9월 23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창한 토요일, 나는 출근을 했다.
'징.. 징.. 지이잉..'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 전화가 울린다. 평소 진동과 다를 게 없지만, 그냥 갑자기 가슴이 철렁한 느낌.
나롱이 동물 병원이었다.
"보호자님, 동물 병원입니다. 어머님이 맡기셔서 나롱이 엑스레이를 찍어봤는데, 복막이 파열된 것처럼 보여요. 위와 폐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네??? 뭐가 파열이 됐다구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럴 수가 있나요??"
너무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다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롱이가 누구한테 최근에 발길질을 당했어? 아니면, 침대에서 떨어진 적이 있어?"
대답은 당연히 "NO."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장기가 붙어있다니??
당황한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진정하고, "제가 오늘 출근을 해서 저녁 7시 이후에나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떡하죠? 많이 급한 건가요?"
이 상황에서 시간을 미룰 수 있냐고 묻는 내 자신이 야속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수업에 대한 책임 때문에.
(평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프다는 이유로 수업을 안 한다고?"라는 소리를 듣기 싫은 게 더 컸을지도.)
우선 나롱이 병원에는 '어쩔 수 없으니, 저녁때 가겠다'라고 했고, 병원에서도 '이관될 병원에 연락해 상황을 전달해 놓겠다'라고 했다.
이후, 다시 걸려오는 모르는 번호.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여기는 ***동물병원입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네.."
"저희가 엑스레이를 확인해 봤는데, 당장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매우 응급상황이라 저녁까지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오시는 게 힘드시다고 전달은 받았는데,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라.. 바로 오셔야 합니다."
"아.. 네, 네. 잠시만요.. 제가 우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후, 나는 정신을 붙잡고, 원장님에게 가서 사정을 말씀드렸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내 표정에 "학부모님께 연락만 잘하고 가세요."라는 말씀을 듣고, 전화를 돌렸다.
내 몸을 수술을 했을 때에도 실밥도 제거하기 전 출근을 하던 (평소 수업에 대한 책임감이 넘쳤던) 나였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양해를 구하는 말을 전하니, 선생님에게 '단단히 문제가 생겼구나'라는 것을 직감한 학부모님들은 모두 '괜찮다'는 말씀으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셨다.
바로 나롱이가 있는 동물병원으로 달려간 나는 나롱이를 보고 무너지고 말았다.
살은 언제 그렇게 빠졌는지 몸은 너무 야위었고, 눈에는 초점도 없이 걷지도,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제일 사랑하는 누나가 왔음에도 눈빛으로만 "누나, 이제야 나 보러 왔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바로 차에 태워 고속터미널에 있는 동물 병원으로 향하던 나는 정말이지 믿지도 않는 하느님을 찾아 헤맸다.
"하느님, 제가 몇 년 덜 살아도 괜찮으니 제발 저희 나롱이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요."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나롱이에게 "괜찮아, 괜찮아. 누나가 지켜줄 거야."라는 말만 반복한 지 20여분, 병원에 도착했다.
나롱이는 의사 선생님 품에 안겨 급하게 응급실로 들어갔고, 나는 울다 못해 지쳐서 멍한 채로 1시간, 2시간, 3시간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의사 선생님이 나오셔서, 현재 처치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고, 다행히 의심했던 복막 파열은 없었으나 꽤나 충격적인 말들을 내뱉으셨다.
"나롱이가 나이가 있다 보니 심장이 많이 비대해지고, 판막에 이상이 생겨 혈류가 잘 순환하지 않아 흉수와 복수가 차버렸고, 그것들이 엑스레이 상에 하얗게 찍히다 보니 장기끼리 붙은 것처럼 보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미 흉수까지 찬 상황이라 호흡도 많이 불안정하며, 흉수와 복수를 지금 빼고 있는데 양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우선 흉수가 다 빠져야 그 이후에 정확히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토시 하나까지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도 생생한 이 말씀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총알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너. 여. 태. 까. 지. 뭐. 했. 니?"라는 말로 들렸다.
검사들이 진행된 후, 상담실로 들어가 나롱이가 일주일 동안 어떤 증상들이 있었는지 엄마한테 전해 들은 대로 말씀드렸고, 이태까지 큰 질병은 없었기에 갑자기 이렇게 된 게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가 안 좋아서 그런거라며 약만 준 동네 동물병원'의 말만 믿고, 일주일 동안 그 고통을 몰랐던 부모님 탓을 할 수는 없었다. 엄마아빠는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시느라 바쁘셨고, 그때는 일이 더 바쁜 기간이라 병원에 데려간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던 시기였다.
오후 3시쯤 동물 병원에 온 것 같은데, 벌써 밤 8시가 다 되어갔다.
나롱이는 중환자실에 며칠 입원하면서 지켜봐야 했기에 입원했을 때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보호자의 동의서(?) 같은 것을 읽고, 서명을 해야 했는데 난 또 울고야 말았다.
"심정지가 왔을 때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라는 문구.
(서류상에 어떻게 적혀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기억하는 내용으로 적은 것.)
나는 내 욕심 때문에 나롱이가 고통스럽게 가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아무 조치도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했다.
그냥 본인의 삶이 다했다면, 더 이상 고통 없이 편하게 보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절차를 마친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롱이 입원했는데, 오늘이 고비일 수도 있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면 엄마의 울음소리.
"나롱아 안돼~ 안돼~ 왜.. 왜 갑자기 오늘이 고비야. 엄마가 지금 갈게. 지금 갈 테니까 거기 있어."
엄마는 가게 문도 닫은 채 바로 달려왔다.
그리고 남편도 퇴근하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중환자실에 입원한 나롱이를 보러 들어가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나롱이에게 인사를 했다.
"나롱아, 누나야. 나롱이 안 아프려고 여기 있는 거야~ 누나가 버리는 거 아니야~ 알지? 나롱이 여기서 치료 잘 받고 있으면 누나가 매일매일 나롱이 보러 올 거야~ 나롱이 잘 있나 매일매일 올 거야~ 그러니까, 잘 버텨야 돼 알았지? 내일도 올게~"
"나롱아, 엄마. 엄마. 아이고 내 새끼~ 많이 아팠지? 얼른 나아서 집에 가자~ 응? 나롱아, 나롱아.."
그렇게 나와 엄마는 '무지개다리 문턱에서의 나롱이'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했다.
(입원하고 삶을 놓은 것처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꼭 피하려고 하는 것 같아 많이 슬펐던 그날의 나롱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