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 부리는 토끼보다는, 느려도 꾸준한 거북이가 되자.
나의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요즈음 학원을 다니는 학생이라면, 90% 이상은 모두 선행을 한다.
그때 당시 나에게 '학원'이라는 곳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기 위해, 즉, '보충'을 위해 다니는 곳이었고, 선행을 하는 친구들은 손에 꼽았다.
(물론, 내가 학구열이 높은 동네에서 살지는 않았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일지도.)
물론, 방학 기간에는 다음 학기에 배울 내용을 미리 '예습'하는 수업을 들었다.
그때는 '선행'이라는 단어보다는 '예습'이라는 단어가 더 맞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선행'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것도 내가 공부를 안 해서였을지도.)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몇 학년 위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못 했을 거라고. 그리고 '어려운 건 당연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나이에 이해될 수 있는 과정을 지금 미리 배우는 것이기에.)
현재의 나는 학구열 높은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선행'은 필수가 되었다.
이 지역은 '선행'이 되어있지 않으면 들어갈 학원 찾기가 '모래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선행이 안 되어있는 친구들은 '일대일 교습'을 하는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해서 한 학기라도 선행을 한 후에 다시 학원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대형 학원의 '레벨 테스트'나 '단원 테스트'를 잘 보기 위해서만 다니는 또 다른 서브 학원들이 존재한다.
'학원'을 다니기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하는 것이다.
나도 사교육 시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학원을 위해 다니는 학원.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내 아이에게 맞는 공부 방법, 내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 내 아이에게 맞는 학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무리 인터넷에 단어만 입력하면 수만 가지 정보가 나오는 시대라지만, 객관적인 판단이 나오기 어려운 곳이 학원이다 보니 발품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맞벌이를 하시는 학부모님들이 발품을 팔아 학원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발품을 판다 한들, 실제로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건 자녀들인데, 내 아이와 맞는지 안 맞는지는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주변 학부모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조바심이 난다.
'우리 아이는 지금 초6인데, 고등 과정 나가고 있어~'
'우리 아이는 지금 중1인데, 미적분까지 한 번 다 나가고, 고1 과정부터 다시 돌리는 중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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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의 소위 빠른 진도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아이는 너무 뒤처져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른 선행을 하는 아이들 중 대부분은 그냥 빠르기만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4주 완성', '2개월 완성'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지만, 현실은 "완성"은 어렵다는 것이다.
한 학기 동안 배워야 하는 과정을, 그것도 초6이 6-1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위에 학년 과정을 '선행'하는 것인데, 한 달 두 달 만에 완성이 된다고?
굳이 단어를 고르자면, '완성'보다는 차라리 '완료'가 맞지 않을까?
'선생님이 완료'해주긴 하니까.
물론, 단 기간에 배우더라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친구들도 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본인이 배운 내용에 대한 "개념 이해"가 잘 되어있다면, 다음 과정으로, 또 그다음 과정으로 넘어가서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선행은 나도 지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행은 빠른 속도로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 "개념 이해"보다는 "문제 풀이 위주"로 진행되는 게 현실이다.
"왜 이렇게 되는지" "왜 이러한 공식이 생겼는지"의 설명과 이해는 생략된 채, 개념을 한번 읽고, 공식을 암기하고, 문제풀이 방식을 외우는 공부.
과연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행'이라는 것이 필수가 된 시대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아이가 정말 '현행'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그다음 과정을 쌓아나갈 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필요는 있다.
공부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하는 것이며, 내 아이가 공부하러 가는 그 길이 지옥처럼 느껴지길 바라는 학부모님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가면 알아서 하겠지' '그래도 배우면 도움은 되겠지' '투자한 만큼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보다는,
'아이가 이해가 되고 있는지' '힘든데 억지로 하는 건 아닌지' '버거운 건 아닌지' 내 아이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것이 진정한 서포트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 한다.'
이 말은 '할 때 되면 알아서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남들에 쫓아가는 공부가 아니라, 내 아이의 속도에 맞는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떨까?
당연히 공부는 힘들다.
시키는 건 더 힘들다.
그래서 아이들도 부모님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
그러나, 학원은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될 수 없다. 가르쳐야 하고, 이해시켜야 하고, 성적을 올려야 하기에.
결과를 위해 보내는 곳이기에.
아이들과 부모님은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통할 수 있고, 아이는 그러한 부모님을 신뢰하게 되며, 서로의 지친 마음이 '충전'되어 '실패해도 또 해볼 마음'이 생기고, '에너지'가 생긴다.
학원에서 돌아온 지친 아이의 뒷모습이 아니라, 미소 짓는 얼굴을 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오늘만큼은 귀가한 아이에게
"불금인데, 치킨 고고?"
를 외쳐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