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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헌문학 Oct 22. 2023

영혼에 무언가가 시작되다,

유독 국내에 그 팬이 많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그 또한 지난 4월에 탄생 120주기를 맞았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 눈은 멀었으며, /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그 불을 / 해독하며, /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 신비의 /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칠레의 민중투쟁 시인 네루다. 그의 시 속에서 남미의 시원한 바람과 파도, 그리고 뜨거운 태양 내음 느껴지시나요. 시인은 이 '시'라는 시를 통해 '시'라는 것을 쓰게 되면서 '별들과 더불어 구르고 내 심장은 바람에 흐르게 됐다'고 얘기합니다. 이 시에는 계시처럼 찾아온 불같은 영감 속에 생명성 지닌 새로운 언어를 찾는 시인의 마음길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저는 그의 시들을 읽는 동안 연신 영화 <일 포스티노>가 떠올랐었는데요.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의 작은 섬 마을로 망명 온 네루다가 자신의 우편물을 배달해주는 우체부와 나누는 휴머니즘 가득한 우정을 그린 영화였죠.     

영화 속에서 사랑에 빠진 우편 배달부는 네루다에게 여인에게 들려줄 로맨틱한 사랑의 시를 쓰는 법과 만물을 새롭게 호명하는 법을 하나 하나 배워가며 생의 찬란한 희열과 언어와 만물에 잠복돼 있던 아름다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열적인 연애시들 또한 무수히 많이 남겼던 네루다. 그 영화 속 남미의 청명하고 새파아란 바닷가 정경이랑 음악도 들려오는 듯도 하죠....      

시집, 참 오랫동안 펼쳐들지 못했어요. 책장 구석에 박혀있는 시집들. 눅눅한 쉰내 풍길 듯 속절없이 바래가는 책들은 점점 희미해지는 감성인 듯도 여겨져 스스로에게 미안해지네요. 지금 댁에 계신 분들은 라디오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배경으로 시집 한권 읽어보시는 건 어떨지요.      

구상 시인처럼, 네루다처럼, 

쭈욱 훑으면서 자신 나름의 새로운 언어, 시적 표현들을 만들어본다는 것. 

나만의 의미화된 언어를 세공하고 호명해본다는 것.      

'시'라는 싯귀절 처럼, 우리들에게도 우편 배달부에게와 같이 

'우리 영혼 속에서 무언가가 시작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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