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휴직을 주변 동료나 친구도 신청해서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까지도 썼다.
시험관 시술을 권유받고, 난임 휴직을 고려해보기도 했다. 현재 직장에서 주 업무보다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잡무가 내게 몰리는 구조에도 불평불만이 꽤 쌓여있던 나로서는 당장의 매혹적인 선택지로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자 채취라던가 시도 때도 없이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고 일정을 조율해야 하고, 주사를 매일 맞으며 부작용도 감내해야 하는 시간들을 보내며 휴직을 쓰는 게 내 건강과 가정을 위한 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왜 난임휴직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지에서 배제되었을까?
생각보다 고민도 길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이란 목표가 꽤 뚜렷했나 보다. 난임휴직을 6개월 정도만 쓴다 해도 부부의 자금 마련 계획은 딱 6개월만큼 더 멀어지게 되고, 6개월 만에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어차피 육아휴직 기간 동안의 자금 마련 계획은 자연스레 휴지기에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싱글일 때도 꽤 생활력이 있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결혼하고 나니 더 강해져 있던 나의 생활력과 경제관념.
견고한 경제관념은 남편의 몸과 마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었다. 경제관념이 맞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Thank, god? Thank, me.
사람을 잘 골랐다 싶다.
그럼에도 남편은 휴직만큼은 내 선택에 맡기겠다고 한다.
휴직하라고 내몰아도 쉽게 휴직을 선택하지 않을 나의 특성마저 파악해 버려 그걸 믿고 저렇게 자신감 넘치게 "알아서 해"라고 말하는 것인지 진위를 확인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이 고맙고 안정감을 준다.
이렇게 부부의 신뢰를 확인하는 정도로의 기능만 하고선 '휴직' 이슈는 자연스레 잠재워졌다. 물론 난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선택권이 오로지 나에게 있다는 것 자체로도 내게 안정감을 줬으리라. 난임휴직을 고려할 수 없는 직장생활 중이었다면 엄청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건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 이런 건가보다.
시험관 권유를 받기 전엔 '이참에 난임휴직을 갈겨야지'하는 생각에 불안함 속 약간의 들뜬 설렘도 있었는데. 막상 시험관을 해야 한다는 현실 상황 앞에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진지하게 생각하였다.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은 '임신', '피검사', '착상', '성공', '실패', '두 줄'이라는 끊임없는 강박관념과 잡념 속의 나를 잘 끄집어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리고 스트레스만 주던 직장이 시험관을 공표한 내게 꽤나 호의적이고, 배려심 깊게도 자율적인 연가 사용을 허락해 주었으니 나로서는 휴직보다는 돈을 벌면서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시험관을 진행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내 집 마련도 하고, 혹여 내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게 되면 직장생활을 그만 때려치울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 하루종일 8시간, 9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집중하며 시간을 보낼 마땅한 것이 없다.
이 생각으로 나는 휴직 생각도 접었다. 하루 10시간을 착상과 주사 스케줄에 나를 끼워 맞출 생각을 하니 아직은 아니겠다 싶었다.
우리는 아직 '나'를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새로운 상황, 겪어보지 않은 미래에 나의 선택도 예측이 어려우니 말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나'를 보니 현명한 것 같기도 하고, 우매한 것도 같지만 생각하고 선택하는 '나'를 관찰하는 것 자체는 즐거운 일이다.
자, 주사 맞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