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휴지, 샴푸 다 쟁이면서 생리대는 안 쟁이 이유
맞춰보세요
평소 별것 아닌 일에 설레는 순간이 있는가?
나는 언제이냐 하면 버스를 타고 갈 때 반대편 차선에서 같은 번호 버스를 운행 중이신 기사님께서 내가 타고 있는 버스 기사님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것을 목격하는 때이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탈 때 기사님의 손을 잘 볼 수 있게 기사님 뒷라인 창가석을 선호한다. 사람이 많아 서서 갈 때도 반대편 차선의 버스를 눈여겨보곤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설레고 기분이 좋다.
이건 밖에서 설레는 순간이고,
안에서 설레고 뿌듯한 순간은 언제이냐 하면
칫솔질을 하고 있어야 할 남편이 치약을 묻히지 않은 채 내게 보여줄 때다. 솔이 뭉개져 이제 청소 도구가 되어버린 듯한 칫솔을 들고 '어쩌지,..' 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을 때. 그때 나는 마법사처럼 새 칫솔을 꺼내서 건넨다. 그럼 그 순간이 그렇게도 뿌듯하다. 내가 선택해서 구매한 물건을 제 기능에 맞게 잘 사용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제 때 보내줄 때, 그리고 빈자리가 어색하지 않게 미리 대비한 나 자신을 칭찬할 때가 바로 설레는 순간이다.
집이 좁은 편이라 '생필품 쟁이기' 규모를 줄이고 있긴 하지만 그런 내가 생리대는 쟁이지 않기 시작한 게 벌써 1년은 넘었다.
'이번 달에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1년이나 쓰지 않고, 넣어두기만 하면 아깝고 자리 차지만 하는 걸'
그렇게 나는 꾸역꾸역 사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피'를 보고서야 생리대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렇지만 열두 달을 내리 '피 본 후 장 보는' 내 모습이 꼭 싫지만은 않다. 스스로 안쓰럽기도 하고, 너 편할 대로 해라 싶기도 하다.
생리대가 1년 간 필요하지 않은 순간을 맞이할 때 생리대를 쟁이지 않은 나 자신이 얼마나 뿌듯할까? 언제 올지 모를 그 순간이 다소 까마득하여 우울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 맞이할 뿌듯한 순간을 생각하니 괜스레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참 별 것 아닌 일에 설레하고, 뿌듯해하고, 가끔 우울도 하지만 감정을 잘 느끼고 스스로 감정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아 조금은 다행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