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고 예의 바른 태도,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말의 속도, 슬픈 소식이지만 슬픈 목소리를 내기엔 좀 부적절할 수 있으니 업무적인 느낌을 살짝 얹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딱딱하지는 않은 정제된 말투를 나는 알아차렸다. 그래서 내용을 접하지 않고도 예상할 수 있었다.
아마 시험관 시술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신선배아 이식 혹은 동결배아 3일, 5일 이식 경험이 있으실 것이다. 특히, 3일이나 5일을 배양한 배아를 이식하신 분들이라면 피검사 결과 전에 보통 임신 테스트기에 손을 대는 분들이 많다(아마 이식한 후 2, 3일 내에 보통 착상이 일어나니 피검사 전에 결과를 예측해 볼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초경 이후 단 한 번도 생리통을 경험하지 않은 적이 없던 나는 이식한 지 5일 째부터 익숙한 '생리 전 복통'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이때부터 비임신을 예감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끈질긴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 피검사 결과 때까지라도 확실한 비극을 마주할 시간을 잠시 미뤘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직감도 대부분 확실히 맞았다.
왜 안 됐을까? 교수님은 배아 상태가 아주 좋다고 하셨고, 아직 만 나이로 30대 초반에 해당되니 배아도 2개가 아니라 1개만 이식해도 좋다고 하셨는데, 왜 안 됐을까?
테니스가 과격한 운동인 것 같아 그만뒀는데 그것 때문인가?
락스를 풀풀 뿌려 화장실 청소를 열심히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누워만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해서 추운 날에도 산책을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이런 오답 노트 작성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러다가 결국 나의 사고가 파국적이고 극단적으로 흘러가서 어느덧 14평짜리 작은 집이라 아기가 오지 않았나 하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멈칫하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낙관적인 편인 내가 이런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니..
그래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그 경위를 파악하고자 내 마음을 탐색해 보기 시작했다.
교수님의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피드백, 나의 좋은 컨디션, 남편의 적극적인 도움 등이 '성공'이란 합리적 추론에 이르게 하였고, 이 과정은 단순한 성공 예측에서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성공 확률이 높다는 점에 나의 바라는 마음과 기대를 잔뜩 얹어서 힘을 꼬옥 주고 있었다.
'소망'이란 것에는 요구가 빠져있지만 '기대'란 마음은 바라고 요청하는 마음이 더해져 있다. 그래서 소망만을 한 마음보다 기대한 마음이 더욱 다치기 쉽고 실망도 큰 법인가 보다.
하지만 시험관 시술이 말처럼 '시험'이 아니기에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합격과 졸업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바로 결과는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인 것 같다.
가장 명확하고 분명한 것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확실히 아는 것은 우리가 준비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하다는 것. 무서운 말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실천할 수는 있겠지만 누구도 모른다. 내가 하고 있는 방법들이 내가 애를 쓰는 것들이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도.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 원인을 파고, 또 판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을 잠시 중단하고, 그냥 이유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냥 인생이 장난 같을 때가 있음을 말이다.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 소설에서 발췌한 부분을 가져와 보았다(이 책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이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그 뜻을 캐내려 애쓰지 마라.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 듯이>
힘든 상황이 나를 옭아맨다 생각했는데 상황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에 내가 더 괴로워질 때 우리는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음에 저장해 둔 몇 가지 내게 도움이 되었던 말들을 꺼내서 되뇌는 것이다.
그냥 장난이었나 보다. 너무 노하지도 말고, 장난이었을 수 있다고 허탈한 웃음 정도 지으며 더 이상 생각을 만들어내 지않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럴 때 우리가 또 하나 신경 써서 할 일은 파국적이고 왜곡되며 부정적인 생각이 무섭게 퍼뜨려지는 것을 바로 세워주는 작업이다.
아가, 집이 14평이라서 오지 않은 거야? 그래서 34평 다른 집으로 간 거야?
파국적 사고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빠져있지는 않아야 한다. 그리고 파국적 사고라는 파도에 휩싸이지 않아야 한다. 파도를 타서 넘길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