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하나 정도는... 왜 아이를 가지고 싶은가?
난임 치료를 시작하고 늘어난 것은 뱃살뿐이 아니다.
셀프로 이루어지는 자기 대화가 늘었다.
나에게 질문을 하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며 정성스레 답변을 준비해 본다.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왜 자식을 하나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게 묻는다.
자식에 대한 욕구와 바람이 양가 부모님의 기대와는 완전히 벗어난 나만의 욕구라 할 수 있는가?
양가 부모님의 바람과 기대를 내가 완전히 나 몰라라 했을 때, 자식을 가지지 않고 사는 삶은 어떤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이 없는 삶을 상상하면 둘이서 평생 벌어먹고살기 무겁지는 않을 것 같으니 오히려 수월하다.
지금처럼 혹독하게 외식을 다이어트하고, 높은 저축률 유지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으며,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평지의 아파트 내 집 마련의 꿈도 내려놓을 수 있다.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다. 부모를 대할 때도 하다 못해 남편을 대할 때도 친한 친구에게도 계산하지 않은 적은 솔직히 없다. 자동 반사적으로 무의식 중에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싫다는 것이 깔려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이 누구든 내게 요구를 할 때면 반발심부터 들고, 내게 준 것도 없이 요구를 한다는 인식이 들 때면 짜증부터 솟구칠 때가 있다.
이렇게 게산적인 내게 '자식'은 어떤 의미일까.
자식에게도 계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자식에게는 계산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계산적인 태도가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생명체에게 줄 사랑을 덜어낼까 무섭다.
그럼에도 나는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시험관 시술을 자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앞으로 찾아와 줄 자식에 대한 계산을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자식을 대하는 '부모'로서의 '나'가 궁금하다. 자식을 만나야 인성의 밑바닥을 본다고 하였는데 나의 인격 바닥을 확인하고자 하는 관음증적인 욕구보다는 나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을 존재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한 고귀함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본다.
내가 사랑을 듬뿍 줄 것이란 당연한 전제도 있지만 폭풍처럼 성장할 존재의 완연한 세상이 잠시만이라도 되어보고 싶은(-너무나 두려우면서도) 마음. 이 마음조차도 욕심이겠지만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한 마음임에 의미를 두겠다.
자식을 키우며 힘들어할 때, 내가 어떤 기대와 욕심을 품고 있었는지 기억한다면 힘든 내 마음의 출발점이 '나' 에게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욕심과 통제 욕구를 스스로 인정하되 고귀한 존재에 대한 존중을 품을 수 있도록 나 또한 노력하리라.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