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과의 전쟁', '한국 성인 30-40대 남성의 약 50%가 비만이다' 등의 말을 들어보셨으리라.
과도한 영양과 음식으로 꽉 차 있는 우리 사회는 먹거리만큼이나 '정보' 또한 '비만'인 상태다.
과량의 정보는 우리가 해보지 않은 경험이나 학습을 하기에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선택을 어렵게 만들거나 오히려 미루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테니스를 시작해 볼까? 채는 어떤 걸 사야 하지? 레슨을 받아야겠지? 그럼 레슨 받는 기간은 어느 정도여야 적당할까? 야외가 조금 더 저렴한데 야외에서 해도 괜찮을까?'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보자.
유튜브,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 인스타, 블로그 등 여러 SNS에서 수백 수천 개의 정보를 검색해서 당장 찾아볼 수는 있지만 사람마다 각자 자기 경험담이 다르고, 그 와중에 '홍보글'은 제낄 수 있는 안목도 갖춰진 상태여야만 한다. 찾다 보면 금방 피로해진다. 결국 우리는 인적 자원을 동원한다. '아는 형님이 혹은 직장 동료가, 친구의 친구가 테니스를 한다는데.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나? 재밌어서 광팬이 되었다고 했나?' 등등 우리의 전의식에 남아 있던 희미했던 정보들이 조금 선명해지면서 의식의 문을 노크한다.
여행을 갈 때도 최근 그 여행지에 다녀온 지인이 있으면 물어보기 딱 좋다. 실시간으로 1:1 상담이 가능할뿐더러 '광고'나 '홍보'를 걸러야 할 에너지가 따로 들지도 않는다.
이렇게 취미, 여행, 공부, 재테크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여러 분야에서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인 '인적자원', '지인 피셜'은 아직도 통하는 방법인 것 같다.
나는 가족에게도 그리고 친구, 지인, 직장 동료에게도 난임 시술을 시작하자마자 '난임아웃'을 했다.
직장 선배와 동료들에게는 추후 병원 스케줄에 맞춘 연차 사용으로 양해를 구하기 위함이었고,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기보다 그저 나의 일상 공유나 다름이 없었다.
난임 시술을 시작한 것이 신중하고 중대한 결정은 아니었기에 일상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오히려 양가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릴 때 걱정을 하실 것에 대한 우려로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시술을 빠르게 시작할수록 여성의 연령이 어릴수록 난임 성공확률이 높아짐에 대해 차분히 설명을 드렸고, 가족들의 응원 속에 시술을 진행해 왔다.
난임 병원을 다니고 6개월 째였나.
대학 동기, 대학 선배, 전 직장동료, 오래된 절친, 현직장동료 등
총 일곱 커플이 내게 난임에 대한 정보 공유와 상담을 요청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내 삶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기에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일곱 커플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시작' 자체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직업 특성상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지인들의 상담 요청에 있어서도 권유나 설득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심리상담은 결국 내담자의 주체적인 삶을 돕는 과정이므로 '결정' 또한 내담자의 몫이기에 윤리적이거나 위협적인 일이 있지 않은 이상은 설득이나 권유는 절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인들의 공통된 시작 단계를 망설이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기에 담담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시작을 망설이는 이유도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난임시술'의 단계나 과정을 생각해 보면 마치 취업의 관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이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다. 겨우 마음의 준비와 결정을 내려 시작 단계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해도 '유지'가 어렵고, 무엇보다 '종결'이 나의 통제 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난임 시술을 '유지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선택지 밖에 남지를 않는다. 우리가 기대하며 시작한 '난임 시술'에서 '성공' 여부는 주치의마저 장담할 수 없으므로 '성공'과 '종결'이 보장되지 않는 어떤 과정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 셈이다.
쉽지가 않다. 보통 20~40대 부부가 이러한 과정을 겪을 것인데 직장에 매여있는 사람은 우선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않을 수가 있는 점과 정부 지원금이 일부 된다고 해도 지자체마다 다르기 때문에 돈과 시간, 에너지를 언제 끝날지 모를 일에 투자해야만 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 초저출산 시대에 '자식을 가질지 안 가질지' 결정만 내리는 것이 아니고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 자식을 갖기 위한 확률을 높이는 선택'을 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불확실하며 도박과도 같은 과정인 것인가.
주변 난임 커플들의 생각처럼 난임시술에 대한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시작'이란 결정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결국 결정은 나의 몫이기에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혹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득 나의 욕구나 마음이 더욱 분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어느 커플은 시술을 시작하기도 했고, 중단한 채 여전히 지내는 커플도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후 결정을 내려야 그나마 후회가 적다.
그래서 함부로 '더 늦기 전에 시작하세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와 같은 그들도 모두 알고 있을 만한 뻔한 말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주변 일곱 커플만 아니라
이 세상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커플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네고 싶다.
(위로보다는 응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