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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시간도 필요해

나쁜 아빠로 산다는 것



시골의 작은 시장 안 한 아이가 뛰어다니다 닭 집 앞에 멈춰 선다. 닭장 안의 울어대는 닭들 중 한 마리를 잡은 아주머니는 닭의 목을 틀어 세차게 돌아가는 통 안으로 넣어 버렸다. 잠시 후 닭은 털이 다 뽑힌 새 하얀 벌거벗은 몸으로 다시 아주머니의 손에 쥐어진다. 아이는 신기 한 듯 그렇게 몇 번을 더 구경하고 나서야 아주머니가 " 애야~가 " 라고 하는 말에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선 또 신나게 뛰어다니며 시장을 내 집처럼 돌아다닌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바쁘셨고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셔서 나와 놀아 줄 시간이 없어 혼자서 놀거나 친구들과 놀아야 했다. 그렇게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 할머니가 용돈을 주며 동네 형들을 시켜 나를 찾아오게 해 놀다가 끌려오곤 했다.    

 

아빠가 된 후 어릴 적 기억들을 되돌아보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라 다짐했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컸기에 내 아이에게만큼은 나의 어릴 적 외로움들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모든 아빠들이 그러했듯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아이와 아내까지 케어하는 워라밸을 만들어 내기란 누군가의 도움이나 회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사회적 인식은 아직 그대로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러하듯 아빠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함께 해주고 싶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 또한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우리에게 최선을 다했던 아버지였기에 아빠가 된 지금에 와서 공감하며 아직도 존경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아이들 또한 그러한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할 텐데 고민이 되었다. 어떡해야 되지? 매일매일 아빠를 찾아 놀아 달라는 아이들, 집안일은 산더미, 해야 할 일들은 밀리고 잠도 못 자는 나날들의 연속.. 아.. 피곤하다.. 해답은 없는 것일까?      



문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 모든 걸 잘할 필요는 없다 ” 나의 시간도 아이들과의 시간도  소중하기에 “ 아이들과의 협상 ”을 시도하기로 했다. 물론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존중하기에 아이들도 아빠를 존중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이 둘을 한자리에 불러 이야기하면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한 명 한 명 따로 불러 협상을 이어 갔다. 아빠는 일과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아빠의 시간도 가져야 돼서 너와 놀아줄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아빠도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단 30분만이라도 너에게 집중하겠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하자!라고 각자 이야기했더니 너무 쉽게 알겠다고 대답해줬다.


뭐지? 왜 이리 쉽게 허락하지?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실천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 하원 후 하루 30분 핸드폰을 놓고 집중했다. 30분이 지났다. 결과는.. 역시나 아이들은 더 놀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단호하게 " 아빠의 시간도 필요해! 아빠는 30분 약속을 지켰어! 너희들도 약속을 지켜야 돼 " 라고 이야기하며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우와~이게 무슨 일? 아이들이 적응하기 시작하더니 놀이가 끝나고 약속된 시간에 아빠를 놓아주는 것이 아닌가. 우와 해방이다~자유다라고 외치고 싶지만 아이들에게만 벗어났을 뿐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다.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놀이 후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단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 20분만 집중해서 놀아줘도 아빠를 찾지 않는다. 첫째 아이는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해주고 둘째 아이는 하원 후 신나게 놀이터에서 놀아 주면 그걸로 행복해한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보다 나와 아이를 위해 하루 딱 20분만 놀아주는 나쁜 아빠가 되어 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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