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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뉴 Aug 03. 2020

본질적으로 아이 같은 사람

나다움을 지키면서 어른이 되기

어엿한 입사 7개월 차 신입인 나의 고민은 "애 같다"라는 말을 들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분기가 끝나고 찾아온 팀장님과의 면담 시간. 여느 때처럼 가족 이야기, 연애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던 중에 팀장님이 "남자친구가 많이 귀여워할 것 같다"라고 하셨다.

평소 나를 귀여워해 주시는 팀장님이시기에 여느 때처럼 다름없이 헤헤, 뭐 조금 그렇죠. 했는데, 뒤이어 나오는 "애 같다는 말 많이 듣죠?"라는 말에 한 방 맞은 듯 얼얼했다. 


신입 연수 3일 차에 진행된 커뮤니케이션 특강에서 이미 한번 비슷한 지적을 받은 터였다.

강사님이 맨 앞줄에 앉아있던 내게 질문을 던져서 대답했더니, 대답한 내용과는 무관하게 "직장에서는 귀엽게 말고 프로페셔널하게 말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를 해주셨다지.

동기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받은 지적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에게 필요한 조언이라고 생각해서 명심하고 나름 신경써왔던 터였다. 그렇게 반년 넘게 근무하는 동안 똑부러지게 일 잘 한다는 평을 들은 것으로 된 줄 알았는데, 애 같다는 한 마디에 그 모든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아, 저 많이 애 같나요? 알고 보면 어른스럽다는 얘기도 많이 들어요~"라고 애써 웃으며 대답하는 나를 보며, 팀장님도 그저 웃으실뿐. 진짜인데... :(

하기사,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가까이에서 오래 봐온 사람들이고, 항상 앞에 '알고 보면'이라는 전제가 깔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팀장님의 반응도 당연한 것 같다.


팀장님은 내게 막내로서 귀여움 받으며 지내는 것이 편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연차와 상관없이 직무 자체가 매니징에 가까운 역할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반장이 카리스마가 없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께 혼났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카리스마와는 담쌓은 지 오래인데, 큰일이다. 나부터도 '커리어우먼'이라고 하면 약간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지, 밝고 명랑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는 않으니, 카리스마가 있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나의 고민을 듣던 한 친구는, "너라는 사람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처음에 네가 보여준 이미지에 너를 넣어놓고는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어. 시간이 지나면 차차 너의 다른 모습도 보게 되지 않을까?"라고 위로해줬다.

첫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하던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팀장님도 '알고 보면' 어른스러운 나의 모습을 보시려나. 아니, 어쩌면 그냥 이게 내 모습인 것은 아닐까.


박완서 선생님의 인터뷰집 <박완서의 말>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어떻게 늙어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해요.
저는 자신을 본질적으로 명랑한 사람이라고 여겨요.
그리고 늙어서도 그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나도 본질적으로 아이 같은 사람인 것이 아닐까. 예수님도 천국은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한 마당에, 아이 같은 것이 꼭 안 좋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철없고 유치한 것만이 애 같은 것은 아니라고, 맑고 밝고 명랑한 것도 애 같은 것일 수 있다고 위안 삼아 본다.

그리고 나 또한 늙어서도 나의 명랑함과 해맑음을 잃어버리고 싶진 않으니까, 회사라고 해서 아직 서른도 안된 나이에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싶지도 않다.


나다움을 지키면서도 충분히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어쩌면 세계 최초로 카리스마 없고 귀여운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면'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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