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암환자를 잘 못 들은 누군가가 지식인에 "아만자가 뭐예요?"라는 글을 올린 것이었다는데 어느덧 다양한 SNS에서 암환자가 스스로를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하고 <아만자>라는 웹툰, 웹드라마까지 생긴 걸 보면 언젠가는 신조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만자라고 하니 왠지 SF영화이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아만자가된 후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겪고 있다.
특히 많은 연락을 받으면서 여러 형태의 위로(?)를 받고 있다.
이 위로들로 인해 생기는 마음 때문에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해온 말이 있다.
"나 나중에 다 나으면 <암환자에게 해서는 안될 말 10가지>라는 책을 쓸 거야."
분명히 위로하려고 하는 말들일 텐데, 혹은 생각한다고 하는 말들일 텐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상해버리는 말들.
그 말들을 나중에 다 나으면 기록하려 하다가 그냥 지금 써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주변에 암환자가 있는 분들이 참고하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1. 어쩌다 그랬어.
어쩌다 암에 걸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연구들을 찾아보니 유전, 환경오염, 각종 약물, 방사선 노출, 생활습관, 스트레스 등등등 다양한 원인이 있으나 대부분의 연구 앞에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라고 쓰여있다. 그만큼 암의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내가 내 몸을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빴던 것은 사실이나, 암의 원인이 '바쁨'이나 '쉬지 못함'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
어쩌다 그랬냐는 물음에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몰라"라고 답하기도 애매한 질문이었다.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는 것은 위로하려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2. 그러게 잘 쉬지 그랬어.
그랬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미리미리 잘 쉬었다면 삶의 질이 훨씬 높아졌을 것이고, 어쩌면 암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쉴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쉬었을 것이다. 상황이 따라주지 못했고,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시간을 지나왔다.
3.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
일을 많이 하며 살아온 것은 사실이다. 나도 암진단을 받고 삶의 패턴과 마음가짐을 많이 바꾸게 되었다. 이 표현 역시 "그러게 잘 쉬지 그랬어"와 같은 맥락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에 쉬지 못했고, 일을 너무 많이 한 것을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이런 말들은 내게는 위로도, 응원도 되지 못했다.
4. 젊으신 분이 ㅠㅠ
지금까지 들었던 말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위로(?)였다.
카톡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그분이 보낸 내용이었다.
아마도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여러 가지 고생을 하게 된 것이 안타까워서,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하신 말씀이겠지.
그런데 이런 종류의 말은 그냥 마음에만 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는 암에 걸리면 안 되고 나이가 든 사람은 암에 걸려도 된다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하지 않아야 할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5. 이 병원, 이 의사가 잘해. 거기로 꼭 가.
암진단을 받고 나니 모든 것이 선택의 기로이다. 생사가 갈릴 수도 있는 그런 선택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회복하신 분들, 완전관해 되신 분들이 다닌 병원과 의사를 이야기해 주신다.
상당 부분 감사한 일이고, 좋은 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로 꼭'가야 만 한다는 말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모든 곳에 다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말을 해준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며칠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정보를 받으면서 혼란스러웠다가 이제는 마음이 괜찮아졌다.
이렇게 많은 환자들이 이렇게 많은 병원에서 이렇게 많은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완치가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유방암 치료는 어마어마하게 믿을만하구나 싶어서.
6. 이거 먹으면 낫는대. 잘 먹고 있어?
당연히 항암에 좋은 음식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음식을 챙겨 먹으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유튜브 정보들과 기사들을 보니 이 또한 혼란스럽다.
낫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감사히 받고 있지만 병원에서 권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잘 먹고 있느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먹지 않겠다 할 수도 없으니 대답할 때 고민이 된다.
수많은 먹거리가 집에 쌓이고 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보내주시는 식재료, 먹거리들이 사랑으로 쌓이고 있다. 하지만 유통기한과 한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으니 어쩌면 주변 암환자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다면 교환권이나 상품권등이 조금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7. 당장 나와. 만나자.
암진단을 받기 전과 후 사람을 만날 때의 마음 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무조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달려가는 성정이었다면, 이제는 나의 체력의 한계와 시간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지인들과 친구들은 쉼을 확보해 주기 위해 연락도 조심스레 하고 만나고 싶은 마음을 참아주고 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더욱 감사하고, 꼭 다시 자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회복에 힘쓰고 있다.
약속을 했다가도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먼저 바로 약속을 미뤄주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당장' 만나야 한다며 어렵다고 하는 말을 거절한다.
물론 당장 만나고 싶은 분들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분들은 조심스러워서 연락을 자제해주고 계시는데 '당장' 만나야만 한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면 정말로 나를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마음속에 관계 속에서 쌓인 무언가를 털어버리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먼저 치료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 아만자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일들을 겪어가면서 상당 부분의 인간관계가 정리되었다고 하신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누가, 어떤 관계를 서로 맺어온 사람이 하는 말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정이 드는 것을 경험한다.
8. 멍울이 만져졌을 때 병원에 가지 왜 지금까지 방치한 거야.
1-3번과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왜 그랬냐'라고 물으면 당사자는 할 말이 없다.
사실 질문을 하는 분들도 원인을 묻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투정처럼 하는 말인 것을 안다. 하지만 이런 류의 말을 들을 때 당사자의 감정이 어떨지를 헤아려주면 좋겠다. 가장 답답하고 속상한 건 당사자 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
스스로에 대한 속상함과 슬픔에 무게를 더 얹는 말은 화자의 온전한 감정일지라고 해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9. 암보험은 들었지? 진단금 얼마 나오나 알아봐.
당장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경황이 없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치료비를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정신이 든 다음 스스로 암환자임을 인정한 후에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암보험을 들었냐는 질문이 치료비를 걱정해 주는 말일 수 있지만 혹 보험을 들지 않은 이에게는 큰 괴로움이 될 수도 있고, 보험을 들어놓았다 해도 꼭 필요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보험을 들어두었다면 진단금은 나중에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경황이 없는 환자에게는 당장에 필요한 말이 아닐 수 있다.
아무 말 없이 치료비에 보태라고 송금을 해주시는 분들, 봉투를 건네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으실까 생각한다. 잘 가지고 있다가 그분들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배로 갚아드리고 싶다.
10. 아이고 쯧쯧쯧...
주변에 암 치료 중이신 분, 화상 경험자, 장애가 있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자신의 상황과 상태에 대해 "아이고 쯧쯧쯧..."라는 말이 들려오는 게 싫다는 것이다.
나도 이번에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그 말이 참 싫다. 혀를 차는 말.
위로도, 도움도 아닌 동정에 찬 표현은 아픔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꾹 삼키면 좋겠다.
번외 편.
1.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셔서 이런 일을 주셨을까!
2. 크게 되실 거예요.
3. 얼마나 큰 일을 하시려고.
4. 고난이 있어야 성장하는 거예요.
등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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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상황, 환경, 겪어온 일들이 다르기에 듣고 싶은 말, 듣기 싫은 말이 다를 테니 모두에게 적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의 제목은 <내게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말 10가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혹은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당한 이에게 조심해야 하는 표현 10가지> 일 수도 있겠다.
아만자가 되고 보니 내가 해왔던 위로들이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 당황하고 슬펐을 사람들에게 오히려 짐을 얹는 표현이 아니었나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