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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Sep 25. 2024

가장 슬플 수 있었지만 가장 환희에 찼던 날

조직검사 결과 듣기 하루 전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 하루 전'이라는 감각이 무언지 그저 상상만 할 때는 몰랐다.

내가 같은 일을 같은 상황에서 겪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건네는 것은 그것이 위로라 할 때도 실수가 될 수 있다는 걸 더 깊이 경험하는 시간들이다.


그간 들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해 낸다.

타인이 겪은 이야기들 속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며 나의 상황을 돌아본다.

벌여놓은 일들을 어떻게 수습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 문득 아직 결과를 모른다는 걸 상기한다.

모든 생각은 결과를 듣고 난 후로 미루자 하고 일상을 살다가 문득 다시 미래를 상상한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분명히 떠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전까지 더 많이 사랑하고 가자 다짐한다.


어제가 바로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 하루 전'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모일 곳에 혼자 먼저 가서 문을 열고 불을 켰다.

다시 보지 못할 날이 온다는 걸 기억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

한 명 한 명 들어오는 걸 보니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놀랍게도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들어온다.

독일에서 세 명, 일본에서 두 명.

어떻게 된 일이지?

한 자리에 모이라고 연락을 돌리고 항공권을 사서 보내도 안 될 조합이다.

너무 놀라고 경이로워서 입이 떡 벌어진다.

내일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이 다 덮이도록 행복이 차오른다.

가장 슬플 수 있는 날이었는데 가장 환희로 가득한 날이 되었다.


20년 전 7년여의 유학을 접고 한국에 들어오기 전 날 나의 모든 짐을 정리해 주고 공항에 나와줬던 동생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내 앞에 있다.

5년 전 일본 여행에서 같이 마차라테를 마시던 귀여운 아이가 엄마와 함께 눈앞에 와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꼭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날이었다.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감지하고 가장 슬플 수 있을 날이었는데,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기적같이 내 눈앞에 한 자리에 모여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놀라운 시간을 함께 보내서 경이로운 날이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감정이 무언지 아주 조금 느껴보았다.


앞으로 매일 기억할 날.

작은 기적이 채워진 날.

조직검사 결과는 비록 원하던 대로가 아니었지만

전날 경험한 행복과 기적으로 인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났다.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일이 펼쳐질까.

고통이 예고되어 있지만 기적 또한 예고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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