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가 가져야 할 적절한 태도에 대한 고민
난감한 대화의 패턴이 준 생각
지난번 올린 글이 어딘가에 노출이 되었던 걸까?
아니면 암환자 당사자와 가족, 친구들이 많아져서일까?
갑자기 유입량이 늘고 조회수가 높아져서 놀랐다.
어제 이 이야기를 하며 지인에게 "요즘은 암 관련 글이 인기가 있나 봐요."라고 웃으며 말했더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그분뿐 아니라 내가 나의 암에 대해 담담하게, 혹은 웃으며 이야기를 할 때 주변 분들이 당황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엉엉 울며 이야기를 해도 당황해하시겠지?
사실 나도 어떤 표정으로 소식을 전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언젠가 암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반응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은 "암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이들이 바로 침대에 누워 환자로의 삶을 시작하는 반면 미국은 다음 날에도 직장에 출근하는 등 일상을 이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즉, 한국의 환자들은 암진단을 사형선고 정도로 생각하고, 미국의 환자들은 당뇨나 고혈압 등 성인병 정도로 생각하고 치료에 임한다는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나도 나중에 혹시 암진단을 받는다면 일상을 살아야겠다고 어렴풋이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환자가 늘었지만 그만큼 완전관해와 완치가 많아진 시대가 왔음에도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여전히 이렇게 무거운 이유는 무얼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의 드라마에서 등장한 암환자들은 대부분 식은땀을 흘리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죽어갔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매체에서 다루는 암환자의 모습이 각인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암환자가 된 내가 가져야 할 적절한 태도는 무얼까를 고민한다.
너무 슬퍼해서 절망해서도 안 되겠지만 너무 낙관적이어서 제대로 치료에 임하지 않거나 대체의학이나 식품에만 의존해서도 안 될 것이다.
또 너무 병원에만 의존해서 스스로 해야 할 건강관리나 식생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안 될 것이다.
모든 선택 앞에서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다.
몇몇 지인들과 대화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할 때가 또 있다.
바로 현재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사실 나는 암진단을 받고 크게 놀라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당황했고, 벌여놓은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었지만 세상이 끝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떤 상황이 온다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태라면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고, 혹여 그렇지 않다면 남은 생을 잘 정리하며 주변을 돌봐야겠다고 매일 생각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고, 죽을 뻔한 여러 번의 사건들과 ABO 식 혈액부적합, 당뇨, 메니에르 등 건강 이슈들을 가진 채 살고 있기에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지인들에게 내가 암진단을 받은 소식을 전할 때 전개 된 대화에 패턴이 있었다.
이 상황에 너무 낙담하지 말라, 절망하지 말라고 해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대로 낙담하지 않았고 절망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너무 씩씩하지 말라고 한다. 울고 싶을 때는 울고, 슬퍼해야 된다고 한다.
물론 다 너무 맞는 말이다.
낙담하지는 않았지만 해야 할 일을 포기해야 할 때,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의 빈자리를 경험해야 할 상황이 있다는 걸 실감할 때 눈물이 난다. 하지만 그 눈물이 절망은 아니다. 상황에 대한 슬픔이지 상태나 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절망은 아니다.
아마도 항암이 시작되면 담담함보다 우는 날이 더 많을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런 패턴의 대화 속에서 상대는 지금 나의 현재 마음 상태가 괜찮다는 것에 대해서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적절한 슬픔을 베이스에 깔고 너무 씩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절망하지 않는 건 무얼까?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한 태도가 24시간 유지되는 것이 과연 건강한 것일까?
암환자로서의 나의 삶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과 인간으로서의 삶에 태한 태도와 마음가짐은 어쩌면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매일의 삶에 그 상황에서의 가능한 최선을 다하고 드는 감정들을 잘 느끼며 살아가는 것.
희망을 잃지 않지만 객관적 팩트를 인지하는 것.
대비하지만 불가능한 욕심은 부리지 않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
한 인간과 한 인간 사이의 대화는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타인에게 어떤 대화를 하는 사람인가를 많이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암환자든, 한 인간으로든 적절한 태도가 아닌 정직한 태도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