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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Oct 02. 2024

암진단 후 가장 위로가 된 말들

공감해 주는 시집『살 것만 같던 마음』에 기대어

어두운 마음


                                                                이영광  


모르는 어떤 이들에게 끔찍한 일 생겼다는 말 들려올 때

아는 누가 큰 병들었다는 연락받았을 때

뭐 이런 날벼락이 다 있나, 무너지는 마음 밑에

희미하게 피어나던

어두운 마음

다 무너지지는

않던 마음

내 부모 세상 뜰 때 슬픈 중에도

내 여자 사라져 죽을 것 같던 때도

먼바다 불빛처럼 심해어처럼 깜빡이던 것,

지워지지 않던 마음

지울 수 없던 마음

더는 슬퍼지지 않고

더는 죽을 것 같지 않아 지던

마음 밑에 어른거리던

어두운 마음

어둡던 기쁜 마음

꽃밭에 떨어진 낙엽처럼,

낙엽 위로 악착같이 기어 나오던 풀꽃처럼

젖어오던 마음

살 것 같은 마음

반짝이며 반짝이며 헤엄쳐 오던,

살 것만 같던 마음

같이 살기 싫던 마음

같이 살게 되던 마음

암 같은 마음

항암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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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마음」은 이영광 시인의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의 표제작이다.

주에 있는 참 아름다운 서점, 쩜오책방 <마을시인의 목요시집> 연재에서 이 시를 보고 가까운 이의 눈물만큼 큰 위로를 얻었다.

누군가 많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연히 뉴스에서 보게 된 사고에 대해 들었을 때, 그 사람이 나와 가깝지 않은 사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그가 많이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어서 다시 건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본능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선함이 바로 그런 지점에서 드러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암환자에게 조심해야 할 말 10가지에 적어둔 이야기들처럼 가까운 이를 위로하려 할 때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얼른 나았으면 하는 마음과,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들이 뒤섞여 마음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막을 치는 걸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말들은 대부분 팩트이다. 일을 많이 하고, 쉬지 못하고, 병원에 빨리 가지 못하면 더 많이 아프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진심 어린 위로는 팩트를 짚어주는 데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동안 받은 연락 중 가장 위로가 된 내용을 나누어보려 한다.

전화가 엇갈리네.  하나님이 어찌 그러니. 고난은 한 사람에게 하나만 줘야지 이럴 순 없지. 기죽지 말고 씩씩하게 당당하게 맞서 싸워 이겨. 요즘은 고생은 해도 완치 되더라. 우리 집사람도 11년 됐네. 일단 항암 들어가기까지 소고기 많이 먹어서 단백질 수치 올려야 해. 그리고 의사 만나면 적극적으로 하고. 힘들다 징징 거리지 말고 항암 다 한다고 해. 과하다 싶어도 재발 안 되게 확실히 해야지. 환자가 힘들다 그러면 의사가 소심하게 나와. 병실은 1인실이나 2인실 잡아. 다인실 있으면 다른 환자 보면서 마음 약해져. 한 해 해외여행 갔다 치고 병실에 투자해. 대우도 달라. 기도할게.

이 글을 보내주신 분은 벌써 만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꽤 높은 위치에 계시면서도 참 겸손하신 분이다. 그분이 믿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이며 살아가는 분이다.

몇 번 서로 통화가 어긋났음에도 전화를 왜 받지 않냐며 채근하지 않는 첫 문장부터 마음이 따뜻했는데, 하나님이 어찌 그러냐는 말이, 고난은 한 사람에게 하나만 줘야 하는데 이럴 순 없다는 말에 위로가 되었다.

그 말이 팩트가 아닌 것을 나도 알고 연락을 주신 분도 안다.

원치 않는 암진단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믿고 의지해온, 그리고 지금도 의지하고 있는 하나님은 실수도, 실패도 하지 않으시며 참으로 선하신 분이심을 성경에 기반해 믿고 있다. 그분의 선택과 허용은 가장 선한 것임을(그 일들을 경험해 가는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신뢰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살아오면서 실제로 경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주신 말들이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 정도의 이야기가 오간다 해도 '이 녀석들 믿음이 없으니 어디 한 번 당해봐라' 하는 분이 아니심을 믿는 데서 오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에게 팩트체크는 오히려 더 큰 아픔을 얹어준다. 그러게 빨리 병원에 가지 그랬어, 일을 많이 하지 말지 그랬어 등의 말들은 날벼락을 더하는 말들, 이미 어두운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하는 말들이 된다.

의사를 만나면 징징거리지 말라는 말도 큰 위로가 되었다. 어두운 시절을 11년 전에 지난 가족의 입에서 나왔기에 위로가 된다. 검소하신 분이 한 해 해외여행 갔다고 치고 1인실이나 2인실을 가라고 해주신 말에도 위로가 되었고, 힘이 났다.

'아, 지금은 정말로 내 건강이 가장 우선이구나'를 생각하게 해주는 말들이었다.

따스한 단어들이 아니었음에도 반짝 반짝이며 헤엄쳐오는 항암 같은 마음이 담뿍 담긴 문장들. 어떤 위로보다 크고 깊이 안아주시는 같은 내용이었다.


이제 다음 주면 정말로 항암 스케줄이 나온다.

항암 주사를 맞으면 뜨거운 시멘트에 갇힌 느낌이 든다던데. 도대체 어떤 정도의 고통일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이렇게 반짝거리는 위로를 받으니 그 시간을 잘 지내 같은 마음이 든다.

징징거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살아서 갚아야 한다. 지금 내게 쏟아지는 귀한 마음들을. 낙엽 위로 악착같이 기어 나오는 풀꽃 같은 시간을 보내야지.

항암 같은 마음들을 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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