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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Oct 04. 2024

힙한 암환자?

암환자도 힙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

얼마 전 친한 교수님과 통화를 하던 중, 그분이 말했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언니는 정말 힙하신 것 같아요!"

(우리의 호칭은 매우 꼬여있는데, 나는 그분을 교수님이라 부르고 그분은 나를 언니라 부른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부른 호칭을 다르게 부르는 걸 어려워하는 나의 성격 탓. 계속 말을 놓아달라 하는데 들어드리지를 못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


암환자와 힙함.

매우 어울려 보이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살면서 스스로 단 한 번도 "힙하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옷도 못 입고, 메이크업도 잘하지 못하고, 뭐든 힙이랑은 거리가 멀다.)

당황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그동안 들었던 칭찬 중 가장 기분이 좋은 표현이었다.


몸이 괜찮냐고, 거동을 하실 수 있냐 묻는 질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몸속에 생겨있던 암을 이제야 발견하고 진단받은 것이니 당장에 몸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아서 그냥 일상을 살고 있다'라고 대답을 하고 이런저런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뒤였다.

암진단을 받은 후 며칠 그 단어가 주는 무게에 입맛이 없었지만 다시 밥도 잘 먹고 있고,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하고 있다고,

혹시 올 수 있는, 아니 언젠가는 당연히 마주할 나 없는 미래를 준비하며 집안을 정리하고 버릴 것들을 버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건 사실 죽음 때문이 아니라도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기왕 이렇게 된 것 가발을 여러 개 사서 조온습에 따라 단발을 했다가 웨이브 장발을 했다가 힙스런 두건을 쓰다가 해보련다고.

암이라는 것이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수 있겠지만 이미 온 것, 하나하나 경험해 보며 기록을 하겠다고, 그리고 꼭 암환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10가지 이런 책은 꼭 쓰고야 말겠다고 했다.


이런 것이 힙함이라면 브런치 안에는 엄청나게 힙한 암환자 분들이 많으시다.

어려움이 지나간 후 그 일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것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부르는데, 그분들은 이미 외상 후 성장이 아닌 외상 중 성장을 보이고 계신다.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시는 이름 모를 암환자 선배 작가님들께 박수를!)

한국의 암환자는 진단을 받으면 사형선고를 받은 듯 암막커튼을 치고 방 안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과연 맞나 싶을 정도로 나보다 훨씬 더 일상을 잘 살아가시고, 삶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암환자도 힙할 수 있는가?

힙함이 그런 거라면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힙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힙한 암환자로 살 것이다.

다음 주에 항암을 시작하면 잠시 쭈구리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힙한 빡빡이 암환자가 되어야지.

오늘도 살아냈다.

내일도 눈을 뜬다면 그건 가장 큰 기적일 테니 그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아끼며 귀히 살아야지.

우리 힙한 암환자들, 모두모두 파이팅!



 


힙한 선배님들의 브런치 모음(응원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reast-cancer

https://brunch.co.kr/brunchbook/gyeong

https://brunch.co.kr/brunchbook/gomsooni1

https://brunch.co.kr/brunchbook/soh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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