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일, 살아가는 일
내 무덤 푸르고
빈 배처럼 텅비어
쓸쓸해서 머나먼
제목만으로도 이사람의 시어는 공허와 허무로 가득할 것만 같다.
불안하고 비관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 접근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타인의 불안까지 껴안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
언젠가 어디 어두컴컴한 카페에서 그녀의 시들을 처음 접했다.
낯선 시어. 강력한 단어, 건조함이 첫인상이었고
사랑, 애정, 따뜻함 등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읽으면 바스락하고 사라질 것만 같은 글들이었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언어에서 오는 자유분방함과 시원스러움에 매료 되었었다.
언젠가 마음이 평온했던 날 그녀의 산문집을 샀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늘 간직하고 있었으므로
[그만쓰자 끝]
자신의 책 표지글을 이렇게 무심하게 툭 던지다니.
이것은 자기방어인가 자신감인가.
그녀가 던지는 모든 말을 주워담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그녀의 산문을 읽고 그녀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그녀의 시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나에게 있어 시는 나만 초대받지 못한 파티 같아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
모른다고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알 수 없어서 더욱 신비한 상태로 남겨놓은 것 깉기도 하다.
나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시인의 이야기를 알게되면 나와 시인만이 공유하는 비밀이 생긴 것 같고 가까운 사이만이 비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비밀을 여기에 써도 될는지.......
그녀가 자신을 설명할 때 쓰는 단어로는 주로 정신분열증, 비관, 절망, 좌절 등이 반복된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내게 남겨진 단어들은 시, 문학, 극복, 의지, 노력 등 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박준의 산문을 읽었을 때와 다르고 김연수의 시절일기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다.
(박준과는 가까워졌고 김연수와는 멀어졌다.)
이 책 한권으로 그녀를 다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멀어진 것 같다.
문장은 단순하고 직관적인데 나는 어째서 더 가까워지지 못한걸까.
일단 글이 쓰여진 시기와 글을 읽는 지금이 꽤 멀다.
그리고 내가 많은 시인들에게 그러하듯이 그녀를 너무 높은 곳에 두고 있어서 단순하고 명백한 문장들마저 분명 내가 모르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버리기도 했다.
그녀의 글을 가까이 두고 천천히 가까워지는 수 밖에 .
그녀는 책에서 거친 표현과 강력한 시어로 비관, 어둠, 자책, 냉소로 일관하지만 사실 그 모든 태도는 어두운 날을 겪어본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여유라고 본다. 구렁텅이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밑바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말하는 비관이 오히려 따뜻한 위로처럼 돌아오는 이유일 것이다.
그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니체를 번역했다는 것과 독일어 시를 번역하는 일도 한다는 것.
니체는 한국어로 써있어도 어려우며 외국어로 된 시어는 말해무엇하나.
(나는 니체의 언어도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넣어두었다.)
온통 허무와 냉소, 우울, 권태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정작 말하고 싶은 건
얼마간 힘을 쓰며 저항을 해야만 깨어날 수 있는 가위처럼 ‘너도 비명을 질러라’ 또는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며 그말을 발음해야만 한다
처럼 ‘결국 사랑’인가
그녀는 다사다난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며 따뜻한 위로를 차가운 시어들로 건네는 이 시대의 시인으로써
그녀가 살아낸 모든 순간이 시(詩)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