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만들기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by 김패티

아침 기온 15도, 맑음, 미세먼지 좋음. 하늘이 구름 없이 파랗다. 5월엔 특히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어야 한다. 5월 아침 공기는 산뜻함이 각별하다. 창문을 열면 공기가 문밖에 서성이던 공기가 문 열기를 기다렸다는 듯 밀치며 들어온다. 바람이 통하도록 동쪽과 서쪽 창문을 열면 동창으로 들어온 공기는 서창으로 서창으로 들어온 공기는 동창으로 집안을 통과한다. 5월 아침 공기는 사물에도 피가 돌게 하고 숨도 쉬게 할 것 같다.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니 해는 벌써 베란다를 다 지나간다. 햇볕이 한뼘 남은 마루바닥 끄트머리에 맨발로 서니 따스함이 전신으로 올라온다. 부드럽게 따스하다. 이번 주 개강하려던 수업이 다시 연기됐다. 하늘은 아무 일 없는 듯 쾌청한데,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아이들을 다시 주저앉혔다. 이번이 세 번째 연기다. 이번만큼은 자연도 인간에게 자비롭지 않은 것 같다.


5월 1일 노동절과 토요일, 일요일을 낀 어린이날 연휴를 보내고, 염려했던 코로나가 다시 확산일로에 들어서면서 내려진 결정이다. 일이 이렇게 되도록 이태원 클럽에 간 젊은이들이 원망스럽고, 공연히 화도 난다. 클럽에 갔다고 없던 코로나가 생겨난 것도 아닐 텐데. 팩트는 코로나 보균자가 어딘가에 있었다는 증거이고, 모여서 감염되었다는 건데. 그럼에도 좋은 맘이 되지 않는다. 어디에든 화를 내고 싶어지는 날들이다.


이번 사태는 또 이상한 방향에서 화제다. 문제의 클럽이 성적 소수자들이 주로 찾는 곳, 사람들은 부주의하여 일이 어그러지게 한 것을 말하기보다 그들의 성적 성향을 관형어처럼 앞에 붙여 분노를 표현한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찾는 클럽인지 물론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을 테지만 나는 언론이 말하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더 안 된 건, 사실여부와 관련 없이 '클럽'하면 어째 부정적인 게 먼저 연상되게 생겼다.


어제는 S 선생과 함께 아차산에 갔다. 처음엔 한강이나 집앞 공원을 주로 산책했었는데, 변경을 넓혀 일자산, 아차산까지 진출했다. 이들은 다 걸어서 간다. 코로나 이라면 차를 타고 근처까지 가서 올라갔다. 코로나 이후 이제 웬만한 곳은 걸어서 다닌다. 이러다 어느 날은 남산까지도 걸어갔다 오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산책 삼아 하는 산행은 오르기 시작한 처음이 힘들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두어 시간 산행을 하느라 어느 정도 힘을 쓰고 난 후보다 더 힘들다. 그럴 때는 무리하지 말고 속도를 더 늦춰 몸의 모드가 산행에 맞게 조절되도록까지 기다려야 한다. 산을 오르다 쉴 때는 잠깐만 쉬어야 한다. 한 5분 정도.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시 오르기 힘들다. 몸은 편한 것에는 신속히 모드를 전환한다. 전환된 모드가 산행에 맞도록 다시 변환되어야 하는데, 산 정상까지 올라야 할 어떤 강제도 없으니 그게 잘 안된다. 나는 쉴 때는 앉지도 않는다. 잠시 서서 가쁜 숨을 고르고 다시 올라간다. 천천히, 서두를 것 없으니 느긋이 걷다 보면 힘든 줄을 잊는다. 힘이 들지 않아야 나무도 보이고 이파리도 보이고 나무 사이에 핀 꽃도 보이고 새소리도 들린다. 운동 삼아 동네 낮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경우도 운동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 그래야 힘이 덜 든다. 그래야 좋은 것도 보이고 들린다.


10여 분 올랐을 때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올 들어 처음 듣는 뻐꾸기 소리다. 농사를 짓는 K 선배가 생각났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내 선배는 아니고 마니의 선배다. 어느 해인가 하루는 웬일로 그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마니가 아니라 내게 전화를 하다니 무슨 일 있나 좀 놀라서 '여보세요'를 거듭 불렀지만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아이들이 장난 전화를 한 건가 보다 싶어 끊으려고 할 때 전화기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잠시 더 듣고 있자니 "들립니까?" 그제야 목소리가 들렸다. 일하다 뻐꾸기 소리가 반가워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딱히 시골이랄 게 없는 나는 2, 30분 달려 잘 가꿔놓은 꽃이며 나무가 있는 선배 농장 가는 게 참 좋았다. K 선배는 여름비 오는 주말이면 방아잎 부침개를 부쳤으니, 꽃농장 둑에 심은 깻잎을 따왔으니 갖다가 삭혀서 먹으라는, 이런저런 일로 아이들과 함께 농장을 찾는 일이 여러 해 계속되었다. K 선배는 여러모로 독특한 면이 있었는데, 아직도 K선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있다. 노래자랑이다. 음식을 나눠먹고 모임을 정리할 때면 언제나 아이들에게 노래자랑을 시켰다. 그 집 아이 셋, 우리 아이 둘. 다섯 아이에게 노래자랑이라는 명분으로 노래를 시켰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점차 레퍼토리도 다양해지고 춤까지 추는 아이도 생겼다. 노래자랑 끝에는 언제나 '고향의 봄'을 합창하게 했는데,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 아빠들도 함께 9명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을 목청껏 불렀다. 그의 아내가 창피하게 제창은 무슨 제창이냐며 핀잔을 주었으나 개의치 않고 선창을 하면 모두 웃으며 따라 합창을 했다. '고향의 봄'을 부르고서야 확실하게 그날 모임이 끝났다.


'고향'은 '고향의 봄' 노래말 같은 풍경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을 막연히 하고 산다. 봄이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환하게 피고, 여름이면 앞개울 물에 미역 감는 아이들이 있을 것 같고, 가을이면 단풍보다는 잘 익은 곡식이 누렇게 물결치는 들판이 있고 겨울이면 추수가 끝난 들판에 눈이 날리고 기러기가 그 위로 날아가고 그럴 것만 같다. 나는 그런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런 고향 이미지를 품고 사는 마지막 세대일 듯하다. 선배는 합창을 쑥스러워하는 우리에게 분위기 좋은 끝에 의미심장한 소리를 해서 숙연하게 하고는 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거였다. 추억이 꼭 고향의 봄 제창하기 같은 것일 필요는 없으나 먼 훗날 아이들끼리, 형제끼리 공유할 좋은 추억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코로나 시국을 통과하느라 나선 산책길에서 떠오른 추억들, 추억들로 해서 우울함이 다소 가신다. 생각할수록 따뜻해진다. 배려도 눈치도 섬세할 줄 몰랐던, 그러나 풋풋하고 순했던 시절이었기에 추억으로 남은 게 아닐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인데, 느리게 걸으면서 찾았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던 K 선배, 추억 만들기는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2020.5.21)


keyword
이전 03화일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