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랐으!"
종종 유머를 구사해서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예민해졌을 때 그의 유머는 더 빛난다.
모두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확산을 걱정하고 있었고, 몇 번이나 연기되었던 고3의 개학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였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패러디한 유머로 사납던 심정들이 풀린 듯했다.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불안이 가미된 이 말은 부천 쿠팡 물류센터 발 확진자 수가 급속히 증가되면서 나왔다.
이번엔 '이태원 클랐으' 같은 유머는 없었다.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일상이 부실한 징검다리를 건너는 기분이다.
아슬아슬하다.
오늘도 벌써 여러 차례 스마트폰이 부르르 부르르 몸을 떤다. 코로나 이전을 생각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오늘 재난 문자가 두 번이나 왔어' 했던 게가 불과 몇 달 전이다. 재난문자가 빈번히 와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겠나. 코로나 이후 재난 문자를 빈번히 받다 보니 이상한 감각이 예민해졌는데, 문자나 전화 알림 진동과 재난 문자 진동을 구별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익숙해진다. 심지어 불편한 것조차.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고 한동안은 상황에 적응이 안 돼 혼란스럽다가, 그런대로 익숙해졌다가, 노는 일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었다가, 그러는 동안 계절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세 번 바뀌었다.
읽고 쓰고 산책하고. 활동이 줄면서 관계는 단순해지고 생각은 많아졌다.
일기를 쓰는 날이 많아졌다.
일기는 부끄러운 날, 수치스러운 날, 화나는 날, 속상한 날, 우울한 날에 주로 쓰게 된다. 그런 이유로 비밀일기 쓰기가 된다. 일기가 생래적으로 혼자 읽기 위해 태어난 거니 비밀이 많은 건 당연하다.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것도 일기를 쓸 때만큼은 비밀이어야 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수성이 무디어진 건지, 부끄러울 일이 없는 삶인 건지 모르겠고, 화나거나 속상한 일도 예전만큼 많지 않다. 뭐든 간결해지고 적어진다.
교중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커피 한 잔하자며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율리아나였다.
일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났다고 했다.
"율리아나, 우리 엄마가 그렇게 미웠는데 웃는 얼굴을 했던 거야? 생각할수록 무서운 사람이네. 태도가 괘씸하고 가증스러워!"
무슨 소리냐고 되묻다가 짚이는 게 있더란다.
맙소사! 일기를 봤구나. 여러 날 냉랭한 남편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남편이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을 해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아서 서로 말을 하지 않은 채로 여러 날 지났다고 했다. 남이라면 안 보고 말면 되었지만 가족이 사이가 나빠지자면 더 나쁜 사이가 되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더라는 얘기도 했다.
"일기를 본 거야? 왜 남의 일기를 보고 그래?"
"보라고 펼쳐놓은 거잖아?"
보라고 펼쳐놓다니, 당황스러웠으나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일기를 쓴 것은 사실이고, 시부모나 남편에게 화나고 속상한 내용을 쓴 것도 사실이니 화를 내는 남편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문제는 이번 일은 혼자 참고 삭힌다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율리아나의 나이 마흔, 모든 관계가 생애를 통틀어 가장 복잡할 때 아닌가.
직장 동료로 해서, 남편, 시부모 그리고 아이들까지 살면서 속상하고 화가 날 때 이따금 일기를 썼다고 한다.
속상한 일을 일일이 발설하지 않는 대신 지저분한 감정을 쏟아내듯 일기를 쓰고 나면 그런대로 참을 만해지더라고 했다.
인간관계라는 게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참아서 크게 손해를 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도 아니다.
참을 수 없는 더러운 감정은 어딘가에 비워내야 한다. 그렇다고 테니스하듯 내 편으로 건너온 감정의 공을 바로 때려 상대편으로 넘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럴 때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
글쓰기는 머릿속에 산재해 있는 생각에 질서를 만들어준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면서 좀 누그러진다. 부글부글 끓던 감정이 거품 꺼지듯 하기도 한다.
그는 계간지처럼 일기를 쓴다고 했다.
대개 나이 먹기와 글쓰기는 반비례한다. 나이를 먹을 수록 글쓰기보다는 말이 많아진다.
그나마 쓰는 글이 일기일 텐데, 그 일기라는 게 우울하거나 속상한 날 썼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일기를 쓰지 않은 많은 날들은 행복에 겨운 날은 아니었더라도 덤덤하고 평범한 그만그만한 날이었다는 말이다.
율리아나의 남편이 그걸 알면 될 텐데, 절기에나 쓰는 일기라는 것.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되었던 그보다 더 많은 날이 있었고, 그중엔 행복한 날도 있었음을. 무엇보다 일기라도 쓰지 않았더라면, 일기에 불편한 감정을 쏟아내재 않았더라면, 그래도 아내가 항상 웃는 얼굴만 할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율리아나 남편은 일 년 삼백육십오 일 웃는 낯으로 아내를 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