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하루에 담긴 진심
동네 버스 정거장 근처에 오래된 단층 양옥이 있었어요. 누군가의 살림집임직한, 그러나 굳게 닫힌 대문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집이었지요.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이었어요. 그 날은 대문이 열려 있고 그 사이로 움직이는 한 사람이 보였어요. 젊은 사람이었어요. 집수리를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이후 지나다닐 때마다 이 집의 용도와 수리의 진도가 궁금하여 기웃 거리게 되었는데, 더러 두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개는 혼자 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 먹고 하면 두세 달이면 집도 짓는 세상인데 수리만 하는데 집 짓는 것 만큼이나 더뎠습니다. 톱질을 하고 대패질도 하고 망치질이며 부지런히 움직이다 어느 순간 조용해지기도 하고,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저리 오래 수리를 하는 것일까.
식탁에서 수리하는 집에 대해, 청년에 대해 이야기하다 집안 식구들이 내기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식구들도 내심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살림집이다, 카페를 할 것 같다, 소품가게를 하려나보다---.
제각기 자기 주장에 그럴듯한 근거를 들었지만 결론은 끝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이른 봄에 시작한 수리는 여름이 되어서야 끝이 나고, 출입문 위에 조그만 간판이 내걸렸습니다. BROWNY8. 가로 30센티미터 세로 10센티미터 정도의 나무판에 짙은 갈색의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쓴 간판. 간판은 밤새 CLOSE였다가 아침이면 BROWNY8이 되고는 했습니다. 카페였어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BROWNY8에서 풍기는 커피향을 맡으며 커피 한 잔을 하지 못해 아쉬워하고는 했습니다. 커피를 들고 차를 탈 수 없으니까요. 그걸 탓할 게 아니라 조금 일찍 나와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한두 정거장 걸어도 좋을 일이었는데, 늘 커피집 앞에 당도해서야 안타까워하고는 했어요.
더위와 장마와 코로나19로 지루한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나는 몇 번 카페를 찾았고, 그때마다 집수리를 했던 젊은이가 커피를 내려주고는 했습니다. 어느날은 손님이 없어 혼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혼자 긴 시간을 앉아 있는 게 미안하면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하기도 했지요. 손님이 와서 주문받고 음료를 내오고 할 때 외는 몇 시간을 더 있어도 주인이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질문을 하면 질문에 꼭 맞는 한 마디만 할 뿐이었고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말이라면 듣고 웃기만 하더군요. 할 말이 무엇이 있을까싶기도 했어요.
가을로 들어선 어느 토요일, 여느 요일 아침이라면 커피 향기로 버스를 기다릴 시간이었는데, BROWNY8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토요일이라서인가, 커피 생각이 없는데도 괜히 아쉽더군요. 그러다 어느 순간 평일에도 BROWNY8 문이 열리지 않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코로나로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데, 그중에도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더 크다는데, 왜 아니겠어. 그동안 잘 버텼지. 이제 딴 집은 가지 말고 갈 일이 있으면 그 집엘 가자. 식구들은 카페 문 닫는 날이 많아지는 이유도 모르는 채 제각기 BROWNY8 주인을 안스러워 했습니다.
올 가을 들어 기온이 가장 낮은 날이니, 강원도 어딘가에는 서리가 내렸고, 눈발이 날렸다는 보도가 있던 날이었어요.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산책하는 호사를 누리던 나는 그 날도 해거름에 카페에 들렀다가 못 볼 걸 보고 말았습니다. 영업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었어요. CIOSE가 아니라 영업을 종료한다는 것이었어요. 그것도 바로 다음 날. 하루 전에 영업종료를 알리는 사람은 없을 텐데, 나는 왜 그걸 못봤을까, 하긴 바쁜 일이 있어 한동안 카페에 오지도 못했지, 그래도 그렇지, 제대로 눈여겨 보기나한 것이겠어, 미안했습니다. 안타까울 것 하나 없을 것 같은데 서운함이 가슴에 파도쳤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카페 안에 사람들이 제법 북적였어요. 주문한 커피를 테이블로 날라왔을 때 나는 국화꽃 한 다발을 내밀며 서운하다고 했어요. 적극적인 대답이 필요하지 않는 내 말에 주인은 다만 웃을 뿐이었습니다. 카페를 나설 때 주인이 나를 불렀다. '더치커피예요. 내일 드시면 더 맛있어요. 오늘 내렸거든요.'
지금도 그 집 앞을 지나면 영업 마지막 날까지 커피를 내리고, 더치커피를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는 젊은 카페 주인의 성실한 모습이 생각납니다. 영업을 종료하는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 하나 없는 하루를 사는 사람. 나는 그날 받은 더치커피에 카페 젊은 주인의 진심을 담았을 거라는 생각합니다. 한결같이, 꾸준하게, 집 수리를 시작하는 날부터 문을 닫는 날까지, 하루같은 진심. 어디를 가든 그런 진심은 축복받을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