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에 튀어 나오니 영화 세 편도 힘들지 않다

슬데없이 진지한 일기

by 김패티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놀라서 내려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갔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서너 명의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장난을 하는데 장난을 죽일 듯이 한다.

마침 순찰을 돌던 경비 아저씨가 왜 싸우냐고 소리치니 아이들은 장난한 거라며 히죽히죽 웃었다.

남자아이들은 형제라도 싸울 때는 정말 무슨 일 낼 것처럼 싸운다고 하더니 장난이라는데 장난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만 놀랐던 건 아니었는지 이웃들 몇몇도 나왔다.

10층 할머니가 '요새 애들은 장난도 무섭게 한다'라며 혀를 찼다.

"어디 사는 아이들이냐?어서 집으로 가라, 다시는 그런 장난하지 마라."

경비 아저씨가 아이들을 나무라며 내보냈다.

"저 애들도 오죽할라고. 날마다 가던 학교를 안 가니 좋은 것 같지만 집안에 갇혀 지내려니 오죽 갑갑하겠어요!"

10층 할머니가 내게 동의라도 구하는 듯 큰 소리로 말한다.

놀이터는 다시 고요해졌다. 모처럼 햇볕은 좋다.


"사흘 만에 튀어나오니 하루에 영화 세 편을 봐도 힘들지 않다."


어제저녁에 올린 페북 친구의 멘트에 공감한다는 댓글과 '좋아요'가 주르륵 달려있다.

그는 지난해 퇴직하고 프리랜서로 활발히 활동하던 사람이다.

오라는 곳도 없고, 누구를 오라 하기도 여의치 않고, 혼자라도 갈만한 곳은 모두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코로나 환자처럼 자가 격리를 하자니

울화가 치민다고 분노가 글자 한 자 한 자에서 전해진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어서 밖으로 나오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며

봄이 오는 골목 사진과 함께 글을 맺었다.


환절기면 콧물과 재채기를 달고 사는 칠순의 형은 연일 카톡으로 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내온다.

형의 문자에는 두려움도 가득하다.


"어떤 유명한 의사가 나와서 그러는데,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다며?"


빌어먹을 놈들!

어디 갈 데도 없고, 텔레비전과 하루를 사는,

코로나가 아니어도 근심이 많은 노인들을 자극해서는!


'잘 있으니 염려 마시라, 조심은 하되 지나치게 조바심하는 것이 오히려 나쁘니 텔레비 뉴스는 저녁에 한 번만 보고, 산책도 하시고---.'


더 이상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조카에게 엄마한테 더 자주 들려 안심되는 이야기를 해드리라는 문자를 보냈다.


모두들 예민해졌다.

조금만 기침이 나도 체온계를 꺼내 열을 재보기도 하는 등

나도 전에 하지 않던 짓을 하고 있다.

큰애 병원에 의심 환자가 다녀갔던 모양이다.

환자를 진료할 때 대면 않을 방법이 없으니, 감염자가 다녀갔다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앞선다.


'코로나19 감염 의심 환자가 다녀갔다, 검사를 했더니 비 감염자로 밝혀졌다'가 팩트인데

그 일조차 2월 초의 소동이었으니 한 달 가까이 지난 과거의 일이 되었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현재진행형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큰애는 속상해 했다.

자발적 격리를 사회로부터 강요당한다고 억울해 했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숫자가 매시간마다 갱신된다.

코로나 대응이 잘못돼서 이 지경이 되었으므로 그 책임을 탄핵으로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묻는 국민이 20만이 넘으면 정부가 대답한다고 했으니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하긴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별 갈등 없이 지내오던 지인도 탄핵 청원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갑자기 그가 낯설어지고 어색해졌다.

여전히 그는 옳은 소리도 가끔 하고, 좋아하는 동물의 귀여운 사진도 올리고 있지만 이전에 빠지지 않고 누르던 '좋아요' 혹은 '싫어요'를 쉽게 누르지 못한다.


이런 중에도 듣기 좋은 소리도 있다.

생명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서 들려오는 소식이다.

쌀과 채소, 각종 발효식품 주문이 쇄도한다는 것이다.

1주 일치 분량을 오전 발주만으로도 넘어섰다는 얘기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은 직접 쇼핑하지 않고 택배로 주문하고,

생명 농법으로 짓는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소독약을 생산해서 팔던 한 영세 사업자는 손이 모자라서, 더 이상 기계를 돌릴 수가 없어서 미처

주문한 물건을 대지 못해 온라인 마켓 문을 잠시 닫았다고 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우울해진 듯하지만

세상은 시소 같아서 누군가 내려가면 반대로 올라가는 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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