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by 김패티


텔레비전 안 본 지 몇 년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늙어가는 남편이 혼자서 마음대로 봅니다. 가장으로서 누리고 싶어했던 특권이랄까, 시시하게도 채널 독점권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때도 독차지하지 못했던 채널권을 방해하는 이가 없어진 이제서야 맘껏 누립니다.)

대신 라디오 광팬인 나는 들을 일이 없어도 라디오를 틀어놓아요.

피하는 방송은 있으나 고정하는 방송도 없습니다.

일 없이 들을 때는 주로 클래식 FM을 듣지만 그마저도 말이 귀에 거슬리는 날에는 '라디오 스위스'의 클래식을 들어요. 온종일 클래식만 나오더군요. 진행자가 바뀌었을 때, 지금 듣는 방송이 라디오 스위스라는 것을 광고할 때만 말을 할 뿐.


아무튼 그렇게 듣게 된 라디오 방송에서 당근 대표이사가 당근의 성장과정을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연간 3조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되었고, (퇴직금으로 50억, 50억 클럽 하면서 몇십억, 몇천 억하는 말을 자주 들어서 그런지 '3조' 가 우습게도 몇 천억 보다 저울이 가볍게 들린다. 무슨 아이러니인가!) 월 이용자 수는 1000만이 넘는 유니콘 기업이 되기까지의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일한 경험이 밑천이었던 사람 둘이 창업을 했다고 해요.

사업을 하는 게 꿈이었다고.

돌이켜 보면 100명 200명 하루하루 이용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던 그때가 좋았다고 말합니다.

마침내 매출 연 3조, 이용자 월 1000만의 기업이 되기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움직이게 한 추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내 귀를 붙잡은 건 1일 1000만 이용자나 연 3조 매출이 아닙니다.

그런 숫자에는 사실 감도 없습니다.

거듭거듭 실패한 이야기와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다른 성공 스토리와 다를 바 없었어요.

내 귀를 울린 것은 바로 창의적인 발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안된다, 실패한다고 했어요.

이상주의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이니까요.

그러나 '무엇을 해보니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거예요.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당근마켓에 적용성을 가늠하고 있었다.'고 말하더군요.


창의적 발상은 적어도 그 일에 대해서 만큼은 잘, 그리고 많이 아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온다는 걸 확인시켜줍니다.

창의성에 대해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어요.

창의성도 어떤 범주 안에서 더 잘 발현되지요. 다시 말해서 당근 마켓을 일으킨 사람들은 관련 업종에 대해 적어도 평균 이상의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거예요. 물론 당근 마켓 창업자들이 다른 모든 분야에 다 창의적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보더라도 그들은 당근 마켓으로 수렴했을 겁니다.


잘 알다시피 '당근'은 '당신 근처'라는 말이지요. 당신 근처를 가장 잘 이용한 사람들은 아이를 기르는 젊은 엄마들이었어요.

당근이 없을 때도 일찍이 엄마들끼리 육아용품이나 교육 용품을 거래하고 있었는데,

그걸로 돈을 벌고 기업을 일궈낸 사람은 아이디어라는 보자기의 귀를 잡아서 묶어낸 사람들입니다.


열망이 사람들을 추동 시키고 모험가로 만듭니다.

이것들은 모두 미래지향적이지요.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므로 기다리는 것이 필수이고요.

그러나 기다림은 막연하고 불안해요.

그럼에도 모험을 감행하는 영혼들에게 축복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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