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게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104동 1002호에 사는 경미 씨는
늦게 딸을 하나 낳아 말 그대로 ‘애지중지’ 키웠어요.
경숙 씨의 애지중지하는 방법은 아이가 다칠까 봐 힘들까 봐
엄마가 다 해주는 거였고요.
아주 어려선 칼질이며 가위질이며 엄마가 다 해주었고
자라서 시험 볼 때가 되어서는 아이 곁에 같이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을 보내고는 했지요.
고등학생이 되고도 그런 일은 계속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밤중에 소리 나는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할 수도 없고,
아이가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뭔가를 하고는 했어요.
신문 읽기, 책 읽기, 필사하기, 뜨개질, 바느질 등등.
불교신자인 경미씨가 손으로 쓴 천수경을 본 적이 있어요.
반듯하고 정성스러운 글씨에는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기도, 그것이었어요
경숙 씨 뜨개질 덕분에 저는 수세미를 여러 번 얻어 썼어요.
그날은 새로운 시간 보낼 거리를 찾기로 합니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계속된 이 일이
지겹고 식상해 새로운 것을 찾다
아이가 썼던 일기장을 읽기로 합니다.
아이가 다닌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일기를 모아 매년
일기책으로 묶어주었대요.
일기장에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온갖 경시대회, 상장, 시험 등등으로
우울한 내용이 그득하더라지요.
그때도 읽었는데, 그때는 안보였던 아이의 우울.
그때는 그게 중요해서 시켰는데, 지금 보니
그리 하지 않았어도 지장 없을 것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 왜 그리 엄격하게 시켰는지.
경필 쓰기 1등급, 수학경시 1등급, 수영 실력, 스키 실력---.
1등급에 목숨을 걸다시피,
다른 아이에 뒤지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경쟁적으로 시켰구나,
머리를 치는 내용이 아이의 일기장에
거의 날마다 들었더랍니다.
문득 시험공부하는 것 봐주기도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더라지요
‘엄마 먼저 잘 테니 너도 하다 졸리면 자라.’는
말을 하고는 먼저 자러 갔답니다.
금방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것도 용기였다고 했어요.
아이 시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나쁘지도 더 좋지도 않았다네요.
그런 것을, 이미 다 큰 아이가 하는 공부 수고에 동참한다고
달라지는 것 하나 없는 것을.
고등학생이 돼서야 엄마의 돌봄은 참견이었고
훈육은 잔소리였으며 그보다 좋은 거라고 하더라도
별 영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참 어리석은 시간을 보냈다 하면서
쓸모없는 잔소리를 했더라며
경미 씨는 웃었어요.
코로나로 하루 24시간 한 공간에 지내면서
삼시세끼 밥도 고단한데
아이는 왜 그리 눈치도 없고
제때제때 하는 것도 없으면서
눈에 띌 때마다 휴대폰에 코 박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어쩌려고 그러나 엄마들은 잔소리가 저절로 난답니다.
고등학생이 아침 9시 10시에나 일어나서
안 보이면 좋으련만 볼 때마다 보이는 모든 게 마뜩지 않더라네요.
코로나 때문에, 이 모든 게 코로나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코로나가 아니라도 자식은,
하는 짓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속이 터집니다.
안 보여야 사이도 유지가 되더라고요.
적당히 안 보아야 관계가 유지되더라고요.
적당히 못 보아야 걱정도 줄어들더군요.
무겁게 사랑하는 사람일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