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 읽기 : 완득이
티코 한 대만 세워도 골목이 꽉 차는 동네, 낡은 집 옥탑방이 완득이가 사는 곳입니다. 드라마에서 더러옥탑방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가난의 상징입니다. 완득이는 친구도 없고 공부도 못하지만 싸움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아이. 먼저 싸움을 걸진 않지만 세상이 자신을 가만 두지를 않아, 아버지를 위해 삼촌을 위해 종종 싸울 일이 완득이에게 생깁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주어진 결핍으로 둘러싸인 싸움꾼 완득이는 벗어날 길 없는 울분을 킥복싱으로 다스리는 열일곱 살 소년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라 방황하는 완득이의 서툰 표현일 뿐입니다.
완득이 아버지 도정복 씨는 사람들이‘난쟁이’라 부릅니다. 카바레가 없어지기 전에는 춤선생이었습니다. 지금은 생활용품을 팔러 시장을 떠도는 장돌뱅이입니다.
완득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남민구는 아버지에게 춤을 배운 완벽한 외모의 실력자이지만 지적장애인입니다. 완득이 아버지가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지요.
완득이가‘똥주’라고 부르는 이동주 선생님은 완득이가 사는 빌라의 건너편 옥탑방에 홀로 삽니다. 사회 과목을 담당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엄마의 존재를 모르는 완득이에게 엄마를 만나게 해 주기도 합니다.
완득이 엄마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사람입니다. 완득이 아버지가 난쟁이인 줄 모르고 결혼을 했다고 해요. 결혼 중개업자의 농간으로 사기결혼을 한 셈이 된 어머니를 아버지는 보내줍니다. 아주 어릴 때 일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조차 생각해 보지 못할 만큼 완득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없었어요.
완득이는 엄마를 '그분'이라고 부릅니다.
킥복싱을 가르쳐주는 체육관 관장님은 완득이에게 동주 선생님과는 다른 스승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킥복싱을 막싸움처럼 하는 완득이에게 스포츠와 싸움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그 한 장의 차이를 넘지 못할 경우 그냥 쌈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타이르기도 하고, 공격보다는 자기 몸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등 구체적이고 것도 깨우쳐줍니다.
완득이의 첫사랑이라 할 수 있는 정윤하는‘인 서울’ 대학 진학을 꿈꾸는 모범생입니다. 윤하가 왕따가 되었을 때 완득이가 도와준 게 계기가 되어 가까워졌는데, 엄마는 결혼을 반대라도 하듯 둘 사이를 결사 방해합니다.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교회의 핫산, 앞집 아저씨도 소설을 맛있게 하는 인물입니다. 이상, 완득이네 동네 사람들을 소개했는데요, 어디선가 싸우며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요?
완득이를 둘러싼 환경은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습니다. 난쟁이 아버지, 다문화가정, 결혼이주 여성 어머니, 열등생, 가난한 집안, 장애인 삼촌. 모처럼 마음을 연 킥복싱 관장님은 재정난으로 복싱장을 제자에게 넘기지요. 킥복싱 조차 비인기 스포츠입니다. 담임도 현실의 학교에서는 국, 영, 수에 비해 비인기 과목으로 밀려난 사회과목 담당이지요. 완득이를 포함하여 주변 인물들까지 완득이와 그 주변 사람들은 삶이 녹록지 않은 비주류 종합세트 같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다뤄지는 문제는 다양하면서도 무겁습니다. 이주노동자 문제, 다문화 가정 문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문제, 깊이 들어가진 않았으나 교육문제 등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민감한 갈등을 망라합니다. 문학은 당대의 사회문제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완득이>는 현대 우리 사회가 머리에 이고 있는 뜨거운 화로들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완득이네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된 이유도 완득이 대학 진학 때문이에요.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지상목표 중 하나는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윤하 엄마는 이 목표를 위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완득이와 윤하가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해합니다.
“나는 한 번도 내 입으로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그 놀림이 내가 아니라 아버지로 향하게 되는 걸 아니까. (중략) 내 아버지는 호킹 박사 같은 1등 대접을 원하는 게 아니라, 높기만 한 지하철 손잡이를 마음 편하게 잡고 싶을 뿐이다.”(138쪽) 아버지를 위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의 장애를 가진 사람을 대하는 인식의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말입니다.
본격 다문화 가정을 다룬 성장 소설이라는 광고와 달리 작가는 완득이 엄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완득이 엄마가 겪었을 어려움이 완득이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한다고 보아서였을까요? 다문화는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 되었지만 이 소설에서는 적극 다루지 않았습니다.
완득이는 ‘겁나게 쪽 팔리는 게 많은’ 청소년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완득이에게는 꿈이 있고, 더러는 사랑이 있고, 분노도 있습니다.
<완득이>는 너무 쉽게 읽히고 가볍게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말들을 듣기도 합니다. 가볍지 않은 무게의 현실 문제를 다루면서도 과하다 할 만큼 단순화하고 재미 위주가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시대에 따라 삶의 모습은 변해 갑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지요. 가볍고 빨라졌습니다. 가볍고 빨라진 것이 통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문제도 기성세대의 그것과는 달라졌습니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분명 완득이의 좌절에서 시작되는 엔딩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좌절이 성공을 품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박쥐’‘올드보이’의 영화감독 박찬욱의 작품 중에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2004)에 포함된 ‘컷(CUT)’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잘 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많은 영화감독 부부가 영화에 출연했던 가난한 엑스트라한테 납치되지요. 그런데 범행 동기가 뜻밖입니다. 엑스트라는 감독이 잘 사는 것도 모자라 심성마저 좋다는 데 열 받았기 때문에 감독 부부를 납치한 것입니다. “부자는 여기서도 잘 살고 천국 가서도 잘 사는” 부조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논의 여지가 있지만 영화감독 박찬욱은 가난한 자의 전유물 같았던 착한 심성조차 이젠 유복한 환경에서 잘 자란 사람들이 가져가 버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성품마저 계급과 소득격차에 좌우되는 것 같아 서글픕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잘 살면서 착하기까지 한’ 인물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이 좀 더 많이 나타나 주길 원하고 있지요. 완득이와 함께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한 주인공 똥주 선생은 아버지가 공장을 운영하는 유산계급이지만 달동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사는 것처럼요.
이동주 선생님은 완득이네 가족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완득이네 가족을 비롯해 사회적인 약자를 대하는 시선이 이동주 선생님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동정에 의한 배품은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갑니다.
<완득이>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다루려 해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여주는 문제작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1. 완득이는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어요. 어떤 것들인지 적어보고 그중에서도 완득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2. 담임 선생님과 체육관 관장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완득이에게 영향을 주었어요. 어떻게 달랐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담임 선생님 -
체육관 관장님 -
3. 작가는 완득이가 킥복싱 경기에서 계속 TKO로 패하도록 그렸는데요, 왜 그랬을까요? 작가의 의도를 상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