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는 믹스입니다만
집에 홀로 남겨진 타로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언젠가 우리는 장난스레 CCTV를 설치해 보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물론 정말로 설치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 작은 상자 속에서 벌어질 일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미 텔레비전 속 프로그램을 통해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주인이 없는 시간, 반려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엎드려 주인이 나간 방향만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온몸으로 슬픔을 토해내듯 하울링을 하거나, 주인의 냄새가 밴 물건을 물어뜯어 놓는 등.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들의 모습은 충격과 함께 깊은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우리 타로도 다르지 않을 거야.' 그 생각을 하자, 우리가 타로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우고 있는가 하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한 번은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녀석의 짖는 소리에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타로가 우리와 함께한 지 1년쯤 되었을 때였다. 멀리서도 단번에 타로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의 짖음은 평소와 달랐다. 마치 영화 속에서 보았던,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앞에 두고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혀 짖어대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었지만, 녀석이 혼자 감당해야 할 온갖 불길한 그림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급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도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현관문 앞에는 계단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가 걸레질을 하다 문을 건드렸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불길한 상상은 현실이 아니었지만, 나의 안도감은 곧 더 깊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결국 녀석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했으니, 가엾고 안쓰러운 마음에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순간은 마치 어린아이를 홀로 두고 가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인가는 녀석이 홀로 남아 있는 시간, 돌돌 말아놓은 이불 속에 들어 있기도 했다. 포근하게 감싸진 솜이불 한가운데, 녀석은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안락한 잠자리를 찾아 들어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짐작하게 되었다. 외부의 모든 소리와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익숙한 냄새가 나는 이불의 온기에 기대어 외로움을 견뎌내는 방식이 아닐까.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는 타로의 모습은, 오히려 격렬하게 짖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는 것보다 더 큰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녀석의 가장 깊은 외로움은 바로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웅크린 침묵 속에 숨어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집을 비운 시간 동안의 미안함과 홀로 남겨진 녀석을 향한 그리움을 평생 짊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말 대신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우리는 그들의 침묵 속에서 외로움을 읽어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내내, 집에 도착했을 때의 그 반가운 꼬리 흔들림을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수백 번씩 다짐한다. ‘오늘도 사랑해, 내일도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