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는 믹스입니다만
한밤중, 녀석의 발소리가 들렸다. 타로는 평소처럼 조용히 왔다 갔다 할 뿐, 낑낑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녀석을 부르니, 해쓱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의 배에서 꾸르륵, 꾸르륵, 소리가 났다. 배탈이 난 거였다. 잠도 못 이룰 만큼 고통스러웠을 텐데, 녀석은 말 못 하는 몸으로 어두운 실내를 홀로 오가며 그 아픔을 견디고 있었다.
낑낑거리는 소리라도 내주지. 안쓰러운 마음에 등을 쓸어주려 손을 뻗자, 녀석은 순간 이빨을 내보였다. 고작 이빨 내보이기라니. 자신의 고통을 늦게서야 알아챈 나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강아지용 배탈약을 찾다가, 사람 약을 먹여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내가 먹는 약을 아주 잘게 부숴 녀석에게 먹였다. 그리곤 타로 옆에 나란히 앉아 배와 등어리를 쓸어주었다. 벽에 기댄 채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보니, 밤새 녀석이 설사를 하느라 들락거린 흔적과 배설물이 흩어져 있었다. 밤중에 들리던 발소리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통증을 참아가며 화장실을 오가던 소리였던 거다. 멀쩡한 개들도 실수로 아무 데나 볼일을 보곤 하는데, 녀석은 그 아픈 와중에도 최대한 정해진 곳에서 해결하려 애썼던 것이다. 타로가 만약 실수했더라도 우리는 나무라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녀석의 고통을 빨리 알아채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을 텐데. 그 무언의 노력과 배려가 나를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주인을 닮았어요." 사람들이 타로와 내가 닮았다고 말할 때, 나는 그들이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 시골 개와 시골 아줌마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이제야 안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더 깊은 곳에서 우리는 닮아 있었다는 것을. 딱 먹을 만큼만 먹고 억지로 더 먹으면 배탈이 나는 습관, 그리고 미련스러울 정도로 아픔을 참아내는 습관까지. 얼마 전 병원에서 의사에게 "아플 때 좀 미련하게 참는 성격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타로의 고통을 늦게 알아챈 미안함처럼, 나 또한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하곤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견디는 방식까지 닮아 있었다.